Dialogue 004
우리는 목적 없이 느린 걸음으로 도시를 걷는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에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현상을 관찰하게 만드는 가벼운 걸음은 삶에서 마주하는 고민을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게 하고, 정치, 경제, 사회적 왜곡 없이 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움직임이자, 평범한 일상을 의미심장하게, 혹은 낯설게 만들어주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게 하는 일련의 과정은 가벼운 산책에서 시작해서 깊은 사색으로 이어지는 긴 여정이 되기도 한다.
아내 "소설가 구보씨는 정말 내면과 현실의 절묘한 균형점을 찾으면서 산책을 그만둔 걸까?"
남편 "ㅎㅎㅎ 글쎄? 어쨌든 아직 우리에게는 그 시간이 오지 않았네-"
역사적인 도시 속, 우리가 함께 쓰는 공간에 대한 낭만적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빠른 현대 도시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날로 줄어드는 길 위의 햇빛, 늘어만 가는 그림자, 고개를 한참 올려야 마주하게 되는 하늘, 질식해 버릴 만큼 용적을 채운 건물과 그 틈새에 부는 드센 바람을 마주하게 되면 부르주아의 규칙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공간으로, 우리가 나이가 들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속도에 맞추어 조금은 덜 세련된 모습으로, 아주 천천히, 자연스럽게 나이가 드는 도시가 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오래된 작은 집들이 조금씩 수리되어 불편하지 않으면 좋겠고, 좁은 골목길은 깨끗해지고, 늦은 밤에는 더 밝았으면 좋겠고, 겉보기에 화려한 건물로 가득 찬 곳이 아니라 걷는 행위 하나로 삶 자체가 시가 되는 낭만적인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