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과 유리의 혁명

lecture note | 04

by BE architects

19세기 프랑스 파리는 질병과 혁명으로 얼룩진 공포 그 자체였다.


프랑스 대문호, 발자크가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과 결혼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보았다면,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는 파리의 건축과 도시설계, 정치, 도덕, 철학, 반정부주의, 정의, 종교, 낭만, 가족, 인간의 본성을 비롯해, 혁명전후의 모습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는데, 인구 100만을 넘어선 당시의 파리는 좁고 삐뚤빼뚤한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난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모습은 당시 시장이었던 오스만의 파리개조사업으로 만들어졌다. 기차역과 광장을직선으로 연결하는 50개의 대로가 만들어졌고, 그 주위에는 오스만 양식이라고 불리던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섰다. 특히 상하수도망 건설은 악취로 가득했던 파리 시의 생활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지고 왔다.



역사주의와 신건축운동이 날카롭게 충돌하던 19세기,

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새로운 기념물들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만들어졌고, 그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85년 런던 만국박람회와 수정궁 / 1878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에펠탑


국가 간 산업 경쟁의 장이었던 만국박람회는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이자, 자본주의의 글로벌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851년 런던의 하이드파크에는 길이 563m, 폭 124m, 축구장 18개 크기의 수정궁이 1년 만에 만들어졌고, 1867년 수정궁에 뒤쳐진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등장한 파리의 에펠탑은 근대 건축의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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