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note | 06
귀족사회가 무너진 것은 시민혁명을 통해 근대에 들어서면서였다.
그림 속에 사상을 담고자 했던 예술가들은 혁명, 정치, 이념, 권위에 대한 극적인 표현으로 고전미술을 부활시켰지만 지나치게 이념을 강조한 탓에 감정표현의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이후 보이는 그대로를 표현하다가, 내면의 감정, 욕망, 감각, 꿈과 신화를 표현하는 단계로 넘어오게 되는데, 이는 우리가 서론에서 얘기했던 대립과 충돌을 통해 발전하는 정반합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술을 새롭게, 젊게!
1880년부터 1920년까지 건축, 공예, 조각, 미술등의 모든 분야에서 대규모로 일어났던 아르누보 Art Nouveau는 독일어권에서는 유겐트스틸 Jugendstil, 영국, 미국, 러시아에서는 모던스타일 Modern Style, 이탈리아에서는 스틸레 리바티 La Stile Liberty, 바르셀로나에서는 모데르니스타 Modernista, 그리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제체시온 Secessionstil이라는 이름으로 탈전통의 선두에 선 개혁운동이었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위해 엑토르 기마르 Hector Guimard가 디자인한 파리 지하철역 입구는 새로운 형태의 장식이 대중화되는 계기가 되었고, 빅토르 오르타 Victor Horta의 타셀하우스는 기능과 장식이 통일된 본격적인 아르누보 건축의 시작이 되었다.
아르누보는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모든 역사적인 양식을 부정하고 자연의 형태를 모티브로 새로운 표현을 얻고자 했던 아르누보가 단명한 이유는 형식주의적이고 탐미적인 장식에 치우쳐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면에 소홀했기 때문이고, 카탈루냐 모더니스트였던 안토니오 가우디 Antonio Gaudi가 칭송받는 이유는 당대의 보편적 가치와 지역적 배경을 토대로 독자적인 미학을 만들어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