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자유를!

lecture note 07

by BE architects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중심지 빈 Wien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였다. 현대사회로의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가장 보수적인 도시이기도 했다.


History of the Ringstrasse


빈 Wien은 중세시대의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오스만제국의 공격에도 도시를 지켜냈던 이 성벽은 링슈트라세 프로젝트라 불리는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무너지게 된다. 더 이상 군사적 가치가 없는 장애물로 인식됐던 성벽, 자유주의 사상으로 인한 시민폭동의 진압, 합스부르크 왕조의 위용을 염두에 두었던 링슈트라세 프로젝트는 오스만의 파리개조계획과는 달리 구도심을 유지한 채 개발해야 했다.


1870~90년대 사이, 폭 57m, 총길이 약 5km의 도로를 따라 줄줄이 지어진 건축물들은 현대적이라기보다는 역사에 등장했던, 과거의 양식을 따르는 화려한 건축전시장이었다. 귀족과 지식인이 모여들었고,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반유대주의와 시오니즘, 전통과 혁신 등 여러 목소리가 뒤엉켜 다퉜다. 이런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젊은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이 보수적인 풍토에 반기를 들고 일어서게 되는데, 이것이 세기말 가장 자유로운 예술을 추구했던 세제션이다.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Wien Sezession


클림트를 필두로 리하르트 게르스틀, 오스카 코코슈카, 에곤 쉴레,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를 포함한 젊은 예술가들이 빈분리파라는 새로운 조직을 결성하며 빈 Wien은 유럽미술의 최전선이 되었다. 진보적인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체감하는 실상은 그렇지 않았지만, 카페와 살롱에서는 철학자, 과학자, 심리학자, 문학가들의 지적인 대화가 오갔고, 은폐되었던 내면의 자아와 무의식에서 터져 나온 욕망들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허물며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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