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18
1930년 귀화 당시 발급받은 첫 프랑스 신분증에는 키 1.75m, 머리는 회색, 눈은 회녹색, 자연스러운 피부색, 직업란에는 문학가_homme de lettres 라고 적혀 있었다. 1887년 10월 6일 스위스 라쇼드퐁에서 태어난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_Charles Edouard Jeanneret는 르 코르뷔지에_Le Corbusier라는 필명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학위도 없고, 자격증도 없었던 그는 50권에 달하는 책을 쓰며 건축가중 다작한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때로는 엉뚱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때로는 볼셰비키로 여겨지기도 했던 코르뷔지에는 생전에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그 논란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왜 이렇게 많은 책을 써야 했을까?
1920년, 코르뷔지에는 시인 폴 데르메와 화가 아메데 오장팡과 함께 잡지 에스프리 누보_L'Esprit Nouveau: Revue Internationale Illustrée de l'Activité Contemporaine 를 창간한다. 르 코르뷔지에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이 잡지는 세상을 향한 관점, 건축과 철학에 대한 정당성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사람들을 설득해야 했을 때, 세상과 투쟁하고 싸워야 했을 때, 건축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고민과 믿음은 끝없는 자신과의 대화로 이어졌을 것이다.
숱한 오해를 만들었던 '집은 살기위한 기계' 라는 말은 지금도 여전히 시대적 맥락에서 벗어나 그 이면에 있는 의도를 간과하기 쉽다. 모든 사람이 편안하고 안락한 집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투쟁을 한다면, 건축이 단순히 집을 짓는 공학이나 예술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혁명과도 같을 것이다.
행복한 도시에는 행복한 건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