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정연한 유토피아

lecture 20

by BE architects

자연을 거부했던 몬드리안의 첫 작품은 자연이었다.


The Large Ponds in the Hague Forest, 1887


1차 세계대전으로 초토화된 유럽, 당시 네덜란드 지식인 사이에서는 신지학이라는 초감각적 철학이 유행했다. 견고하고 명확한 직선이 세상의 본질이라 여기며 절대적인 진리를 찾아내겠다고 한 몬드리안 역시, 자연 속에 불변하는 단 하나의 진리를 찾아 1908년부터 1913년까지 나무를 그리게 된다. 형태가 없어지고 리듬만 남은 나무 연작은 그렇게 수직선과 수평선이 되었다.


몬드리안.png Composition II in Red, Blue and Yellow, Piet Mondrian 1930


반 되스부르크_Theo van Doesburg와 몬드리안_Piet Mondrian을 주축으로 결성된 데스틸_De stijl은 대량생산의 조건과 일치하는 새로운 조형원칙을 내세우며, 세상의 불평등과 비극, 무질서 속에서 완전한 세계를 꿈꾸게 된다. 단순한 조형, 미학적 엄격성, 제한된 재료와 색이 만들어낸 산업적 조형은 훗날 예술과 기술의 통합이라는 바우하우스의 유명한 테제를 이끌어내며, 디자인 시대를 알리는 상징이 되었다.


모든 예술이 서로 다른 장르, 매체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듯,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보자면 건축가는 조각가나 화가를 겸하기 일쑤였다. 특정 건축물이나 종교적 목적에 귀속되었던 회화가 벽으로부터 조금 일찍 떨어져 나왔고, 조각은 건축과 늘 붙어있었다. 건축적 맥락에서 벗어나, 독립된 작품으로 소장되고, 전시되고, 감상하게 된 일은 불과 몇 세기가 되지 않는다.


Rietveld Schröder House, 1924


1924년에 지어진 슈뢰더 하우스는 몬드리안의 회화와 같은 2차원의 순수예술을 3차원의 미니멀한 구성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용목적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최초의 가변적 건축물, 부르주아적 공간과 위계 없이 이동식 칸막이로 만들어진 가변적 공간구성에 있을 것이다.


순수예술과 건축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 남게 된다면 그것은 유용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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