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cture 21
예술과 건축이 혁명정부의 도구로 사용되던 때가 있었다.
권력이 예술을 억압하던 시대라기보다, 오히려 예술이 권력의 언어를 자처하던 순간에 가까웠다. 20세기 초, 사회 전체가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믿음 속에서 예술과 건축은 더 이상 개인의 감정이나 미적 취향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설계하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 되었다.
러시아 혁명 이후 등장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에게 예술은 혁명의 동반자였다.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문이었다. 회전하는 구조물, 기능에 따라 나뉜 공간,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태는 혁명이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영구한 과정임을 상징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에게 건축은 완성된 기념비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계속 수정되는 실험실이었다.
이들의 시선은 언제나 앞을 향해 있었다. 과거의 양식은 부르주아의 잔재로 여겨졌고, 아름다움은 기능과 집단속에서 새롭게 정의되었다. 개인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집단의 리듬, 노동의 동선, 사회를 효율적으로 조직하는 구조였다. 예술가는 더 이상 고독한 창작자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는 기술자였다.
같은 시기 이탈리아에서 전개된 파시스트 건축은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출발점 역시 국가였다. 무솔리니 체제 아래에서 건축은 권력의 얼굴이자, 질서의 증명이었다. 파시스트 건축은 고대 로마의 비례와 기념비성을 호출하면서도, 불필요한 장식을 제거한 채 차가운 단순함을 유지했다.
방향은 달랐지만, 두 흐름은 묘하게 닮아 있다. 둘 다 예술의 자율성을 부정했고, 둘 다 국가가 미학을 결정했다. 무엇보다 둘 다 공간을 통해 인간을 재교육하려 했다. 어떻게 걷고, 어디에 서고,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까지 건축은 말없이 지시했다. 이 시기의 예술과 건축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예술이 사회를 바꾸려 할 때, 그것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그리고 건축이 특정한 이념을 품을 때, 그 공간 안에 사는 인간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혁명의 열기 속에서 태어난 형식과 권력의 야망 속에서 세워진 건물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