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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Feb 12. 2024

사춘기 딸과 홈베이킹(5)

내 배가 늘 빵빵했던 이유: 동일시

에그타르트

재료 : 박력분, 버터, 설탕, 소금, 찬물, 달걀노른자, 우유, 생크림, 바닐라 시럽

엄마 : 애는 왠지 불쌍해 보인다. 가운데가 들어가서인지 배가 홀쭉한 느낌?

으니 : 배가 홀쭉하니 좋지. 내 배도 늘 빵빵해있다가 들어간 지가 얼마 되지 않았잖아?

엄마 : 맞아, 으니 배가 어릴 땐  뽈록 나왔었는데... 이제는 쏙 들어갔네^^

으니 : 그땐 몰랐지. 내 양을. 언니가 먹으면 먹는 대로 따라먹었으니까. 뭐든지 언니가 하는 대로 하는 게 좋은 건 줄 알았거든. 그런데 언니가 고등학생이 되어 나랑 있는 시간이 없어지니까 알게 된 거야.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양에 비해 너무 많이 먹었다는 걸. 늘 배가 불러 헉헉대고 배가 꺼지기 전에 또 먹고. 엄마랑만 밥을 먹게 되면서 나의 진정한 양을 알게 된 거지.

엄마 : 그럼 유니는 대식가고 으니는 소식가인 거야? 하긴 유니는 태어날 때부터 뱃골이 남달랐지. 젖 떼고 바로 알았잖아. 1.5L짜리 우유를 한 번에 마시더라고. ㅎㅎㅎ

보통 아이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 하게 된다. 유아기에는 엄마를, 초등학생땐 선생님을, 중학교 시절엔 친구나 아이돌을 따라 한다. 엄마들은 자녀의 말과 행동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신기해한다. 때론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모습, 숨기거나 고치고 싶은 모습을 자녀가 보일 때 화를 내기도 한다.

우리  으니와 유니도 꼬맹이 일 땐 애벌레 같은 작은 곤충들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만졌는데, 벌레라면 질색하는 엄마 때문인지 언젠가부턴 벌레의 등장에 꺄악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게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닮은 담임선생님이 좋아서 선생님의 여러면을 그대로 흡수했다. 가장 완벽한 따라 하기는 글씨체였는데 초등생의 글씨라고는 믿을 수 없는 어른의 우아한 글씨체였다. 덕분에 경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타기도 하고, 음... 이제는 말해도 되겠지? ㅎㅎ 중학교 때부터 새로운 취미생활이 시작되었다. 성적표에  확인했다는  부모님의 확인서 대필가!라고나 할까? 일 년에 4번 시험을 보고 성적이 나오면 부모님 확인을 받아와야 했다. 시험을 정말 망쳐 도저히 부모님께 보여드릴 수 없는 아이들, 깜빡 잊고 확인글을 못 챙긴 아이들, 아예 자녀의 성적에 관심이 없는 가정의 아이들, 그냥 재미로 약간의 반항을 하고 싶은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중1부터 시작된 우리의 작당모의는 고등학교까지 지속되었다. 장기 애용자들은 이미 내 필체가 부모님의 필체가 되어 꾸준히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양한 필체와 의견을 친구들 맞춤 버전으로 쓰느라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돌이켜보니 일종의 문서조작으로 범죄 행위인 것 같은데 잘은 모르지만 법적으로 친다면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을까?^^


사이가 각별한 으니와 유니는 지금도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자기들은 엄마, 아빠 없이는 살아도 언니, 동생 없이는 못 산다고. 으니의 유아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대상은 언니였고 언니를 동일시한 모습들이 정말 많았다. 가끔은 내가 으니에게 엄마의 역할을 잘 못해서 유니가 대신했나?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도 든다. 가족 안에 필요한 역할은 분명 누군가가 수행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으니의 언니에 대한 동일시로 지금의 으니는 언니와 아주 비슷한 모습일까?

전혀 아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자신만의 개성이 뚜렷해졌다. 언니와는 오히려 정반대의 모습이지만 여전히 사이좋고 서로의 다름마저 예뻐하는 자매다.^^


* 동일시 : 본인이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의 태도, 가치관, 행동 등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의 행동과 말투, 사고방식과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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