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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Feb 11. 2024

아빠와의 이별은 안녕(3)

그녀 이후, 사랑은 없다(3)  

교실 복도를 스치며 그녀가 쪽지를 건넨다.

‘오늘 오후 5시, 사거리 빵집 앞에서 슬쩍 만나’


엄마와 학교의 간섭이 심해진 이후로 해가 떠 있는 거리에선 만난 적이 거의 없었는데 무슨 일이지?

천천히, 무심히 5시 정각에 빵집을 지나친다. 그녀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급한 일이 생겼나? 갑자기 아프신가? 걱정이 앞선다. 걸음이 느려지며 한 번 더 돌아볼까 하는데 묘한 인기척이 느껴진다.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다. 내 걸음이 빨라지자 덩달아 빨라지는 걸음 소리가 들린다.

“저, 저기요!”

멈칫. 도망가야 하나?

“선생님 만나러 왔지요?”

휙 돌아선다. 초등학교 2학년 남짓한 아이가 꼬깃꼬깃 접힌 쪽지를 준다.

[놀랐지? 나는 오늘 안 나가. 오늘 만날 사람은 네 또래 남자애야. 찾아봐. 한눈에 알아볼 걸]


맞네, 한눈에 알아보겠네.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애다. 한 여름인데도 두꺼운 긴 팔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다. 헐렁하니 키만 전봇대만 한 남자애의 허공을 향한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다. 저 애도 나처럼 모르고 나왔나? 말 걸기 힘든 타입인데... 어쩌지? 주변을 뱅뱅 돈다. 남자애가 의식하는 게 느껴진다. 내 발걸음을 쫓는 눈, 갑자기 내 팔을 휙 잡는다. 휘청, 남자애가 넘어지려는 내 등을 받친다. 남자애의 눈빛을 보고 말았다. 물빛이다. 맑은데 늪처럼 빠져들 것 같이 막막한 눈빛.

“너구나”

“이거..”

쪽지를 펴 보니 틀림없는 그녀의 글씨다.

[오늘 만날 사람은 네 앞의 사람이야. 내가 너만큼 사랑하는 사람]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우리, 걸을까?”

우리, 언제 봤다고?

그럼에도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남자애와 같이 걷던 양화대교에 해가 진다.

"널 증오했어"

아무리 그렇다 해도 처음 만난 사람한테 증오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하다니 예의가 없다. 기분이 언짢다.

"그래서?"

"참 이상하다. 지금은 그 마음이 사라졌어"

"그런데?"

"더... 슬퍼지고 외로워졌어"

"..."

"누나하고도, 너하고도 이별이니까."

"누나... 가 선생님을 말하는 거야?"

"응, 나의 누나, 친구기도 하고 엄마기도 한... 내 사랑이기도 한"

"쪼그만 녀석이 못하는 소리가 없네"

"내가 쪼그마하면 넌 뭐냐? 진짜 쬐꼬만 게"

"누나가 거짓말했어. 널 나만큼 사랑한다고? 틀렸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너에 비하면"

해가 숨고 달이 나오더니 머리 위에 달이 떴다. 남자애는 이런저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달빛은 그녀에게만 허락된 줄 알았는데, 남자애에게도 비치는 걸 보니 그녀가 그 속에 있구나. 남자애는 부탁이 있다고 했다. 나의 엄마를 보고 싶다고 했다. 처음 만난 남자애를 뭐라고 하면서 엄마에게 보여준담. 한껏 걱정이 앞섰지만 거절할 수 없는 간절함이 있었다. 엄마를 보고 난 남자애는 고맙다며 이제 됐어. 널 더 잘 알 것 같아.

남자애의 눈동자에서 물빛 눈물이 흐른다. 바보 같은 녀석이. 왜 울어.

"알지?"

"뭘?"

"이게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걸"

"느껴지긴 했어. 마지막이라는 걸"

"한 번의 만남이 영원한 그리움이 되는 거야, 꼬맹아"

머리를 한번 콩 쥐어박고는 남자애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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