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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Feb 13. 2024

뇌의 주인은 바로 나!(4)

안전심리(7) - 우울의 참모습   

J 님은 남편과 함께 내방했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그녀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해볼 건 다 해봤는데 별 소용이  없더라. 여긴 들 뭐 다르랴. 한걸음 한걸음에 체념이 가득했다. 10년이 넘게 우울하여 병원과 한의원을 들락거리며 이런저런 약도 먹어보았지만 증세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늘 듣는 피드백은 스트레스받아서 그렇다, 운동부족이다, 영양이 부족해서라는 것. '누가 모르나... 한결같은 소리네, 영양가 없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내 병에는 약이 없다는 생각만 강해졌다.


그녀의 첫 내방 뇌파검사는 다음과 같았다.

왼쪽부터 집중력, 각성, 알파밸런스(우울 수준), 감마밸런스(좌/우뇌 활성화비율), HRV(심박변이도), SDNN(스트레스저항도), LF/HF(단기스트레스)

집중력은 저하되어 있고 각성 수준은 보통, 알파밸런스에서 -0.2로 다소 우울한 상태로 나왔다

 약을 복용해야 될 정도는 아니지만 경미한 우울감이 장기간 지속된 것으로 여겨졌다. SDNN(스트레스 저항도) 32.59로 만성스트레스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 이는  외부자극에 둔하게 반응하여 희로애락의 감정반응을 잘 느끼지 못해 밋밋한 정서상태로 생활하게 될 수 있다. 한 마디로 축 쳐진 재미없는 상태.

LF/HF(단기스트레스)는 스펙트럼을 넘어설 정도로 측정 당시 흥분된 상태였는데 그녀의 설명은 남편한테 끌려와서 화가 난 결과라 했다. 상담을 마칠 무렵, 한번 더 측정했더니 나머지 수치는 비슷했지만 LF/HF(단기스트레스) 지수는 정상치로 나왔다.

* 알파파가 좌/우뇌에 균형 잡히게 나오면 마음을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로 유지해 주지만, 좌뇌에만 많이 나오면 좌뇌가 하는 기능(논리적/이성적 사고, 언어적 학습, 실행능력, 능동적 성향 등)을 너무 편히 쉬게 해 주어 무기력하게 만들어 준다고 한다.


그녀가 십 년 이상을 무기력하게 산 이유는 무엇일까. 

열애 끝에 맺어진 결혼 생활은 꿀같이 달았다. 아이들이 태어나도 에너지 넘치는 남편은 일도 육아도 즐겁게 함께 해주었고 주변 사람들은 잉꼬부부라며 부러워했다. 문제는 남편이 40세가 넘어서면서 직책을 맡게 된 뒤부터였다. 책임감이 유난히 강하고 경쟁심도 남달랐던 남편의 에너지가 회사에 집중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남편과 함께 해왔던 J님은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활동이 재미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힘이 점점 없어지고 입꼬리도 쳐졌다. 최근 3개월에는 더 바빠져서 주말도 쉬질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남편의 혈압도 높아졌다고 한다. 남편의 알파파 비율도 2%, SDNN도 32로 나와 번아웃이 걱정되었다.


뇌파검사 결과를 본 부부는 약속했다. 아무리 바빠도 매일 30분 이상 걷기로. 나는 1달 이상 꾸준히 실천하신다면 분명 변화가 있을 거라 말씀드리며 약 두 달간 상담을 지속했다. 오실 때마다 J 님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짐을, 에너지가 올라오고 있음도 느껴졌다.


P 님이 먼저 제안한다. 열심히 실천했으니 검사해보고 싶다고.

결과는 놀라웠다. 알파밸런스가 -0.2에서 0으로, SDNN 이 32.59에서  55.74로 변했다. 만성적인 우울감이 사라지고 삶에 생기가 돌게 된 것이다. 나는 부부께 너무나 감사했다. 새해에 가장 기쁜 선물을 주셨으니 말이다.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하셨단다. 회식이 있으면 자정이 넘어서도 그 약속만은 꼭 지키셨단다. 그리고 또 하나, 산책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갈 때 남편이 "사랑하는 J야~"라고 늘 불러주었다는 것. 물론 와이프를 위한 활동이 남편에게도 똑같이 좋은 영향을 주었다.


J의 우울감은 남편의 관심과 사랑을 원하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말이 많지 않고 다소 시크한 J는 남편에게 자신을 봐 달라고 나에게 다정하게 시간을 내어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바쁜 남편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큰 몫을 해 도저히 남편에게 투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와이프가 요청하면 어떤 식으로든 들어줄 마음이 있었다(J님의 남편뿐 아니라, 우리도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지요~) 


남편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며 시간을 함께 하자 마음은 소녀로 돌아갔다. 부부는 자신들의 사례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달라고 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시간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 후로 변화된 검사결과가 지속되는지 확인을 거쳐 3개월 후인 22년도 5월에 상담이 종결되었다.


24년 설날을 보내면서 2년 전 최고의 새해 선물을 주신 부부가 여전히 새록새록 생각난다. ^^


* 처음 글을 읽으시는 분들을 위한 뇌파검사 Tip! 

1. 집중력과 각성 수준 : 40~60이 보통. 

2. 알파발랜스(알파파 좌우뇌 치우침)와 감마발랜스(좌우뇌 치우침) :-0.1~+0.1 사이면 좋음. 

    알파밸런스에서 좌뇌로(아랫부분) 그래프가 치우치면 우울 수준이 좋아짐. 

3. 스트레스저항도(SDNN) : 50이 평균. 40미만이면 만성스트레스가 있으며, 70이상이면 예민한 타입입니다.

4. 단기스트레스(LH/HF) : 1.5가 보통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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