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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Feb 14. 2024

아빠와의 이별은 안녕(4)

운명은 그녀들을 내게서 멀어지게 하네

나는 오늘 그 여자애를 만난다.

처음엔 증오했다가 어느새 궁금해진, 여자애. 지금은 좋아져 버린 아이.


점쟁이 노파가 나는 여자를 멀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벌써 두 명. 에이... 재수 없는 점쟁이 얘기를 왜 믿고 있는 거야. 괜찮아. 그런 것 무시해도 돼. 그렇지, 엄마? 엄마는 왜 나를 낳다 아프게 되었어? 늘 아픈 엄마, 힘이 없어서 날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어. 내가 아들인데도. 한 번도 안아주지도 않고 웃어주지도 않았어. 물건 보듯 날 보더니 하늘로 가버렸네. 한 번도 꼭 안아주지 않고. 아빠는 또 뭐람. 엄마가 죽자마자 결혼? 그것도 일하는 아줌마랑. 누가 알아? 엄마가 살아계실 때도 그 여자랑 그런 사이였는지. 인간 같지도 않다. 여자들도 밉지만 아빠가 더 나쁘다. 엄마는 혹시 아빠 때문에 화병에 걸린 건 아니었을까? 나 같은 놈, 아빠 유전자를 이어받은 놈이 뭐 잘 살겠어. 확 죽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아. 용기가 없네. 내 몸에 칼을 그어 짜릿한 아픔의 쾌감으로 위로하던 많은 날들. 그래도 참을 수 없을 땐 무조건 밖으로 달려 나가.

그날도 그런 날이었어. 학교를 지나는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어. 시원한 바람이 빰을 어루만지고 달빛이 기분 나쁘게 예쁘더라고. 제기랄. 이런 기분 싫어. 나랑 어울리지 않아. 눈이 띄는 가장 큰 돌멩이를 주워 창문을 향해 냅다 던졌어. 크크크. 명중. 힘이 좋았나 봐, 먼 거리도 성공. 권투를 한 보람이 있군. 기분이 단숨에 좋아졌어. 바로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내 귀를 잡아당겼어.

누나와의 첫 만남이었지.  

“이 녀석, 이 밤중에 뭔 짓이야. 혼나 볼 테야?”

“아야야... 누구세요?”

“누구긴 이 학교 선생님이다. 넌 누구냐?”

“아이씨... 선생이고 나발이고 이 밤중에 왜 돌아다니세요? 미쳤어요?”

“이게 어디서 미쳤데? 너야 말로 이 오밤중에 어딜 어슬렁거려? 학교 창문 깨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공공기물 파손죄인 거 몰라?”

“뭐 퇴학이라도 당해요? 더 좋네. 학교 안 가면”

“너.... 일부러 센 척하지 마. 나 너 학교에서 여러 번 봤어. 빡빡머리에 늘 긴 팔만 입고 다니잖아. 땅만 쳐다보면서, 축 쳐 저서는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다니더라”

우리 반을 가르치지도 않는데 날 어찌 봤을까? 관찰력 하나 기가 막히네. 도망갈까? 아냐 이미 날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 동네 한 바퀴 걸을까? 그럼 창문 깬 건 모른 척 해 줄게”

이상한 여자다. 혼내지도 않고, 명색이 선생인데. 이런 사람이 선생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이 사이코 같은  선생님이 그날 이후 나의 누이이자, 연인이 되었다. 학교 가는 일이 즐거워졌다. 그녀가 있으니까. 점쟁이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두 여자와의 만남을. 믿지 말자. 그런데 신경이 쓰인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말라고? 그런 내가 다친다고? 까짓 거 다치면 어때? 어차피 한 번 죽으면 그만인데 운명의 그녀가 나타났는데 포기하라고. 말도 안 돼. 그녀가 없이는 나도 죽어. 만나도 죽고. 쌤쌤이네. 태어나 처음으로 나를 안아주고 나를 웃게 만든 그녀를 포기할 순 없어. 그녀 없이는 숨이 막혀. 


나의 그녀가 어느 순간 여자애 얘기만 한다. 운명적인 만남이라며.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첫눈에 알아봤다나. 그 아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온 것 같다고. 그럼 나는 뭐야? 왜 내게 다가왔지? 호기심으로? 이래서 점쟁이가 여자를 멀리하라 했나? 결국 그녀는 날 장난 삼아 데리고 논 걸까? 아니지. 아니야. 나의 그녀는 그럴 사람이 절. 대. 아니야. 여자애가 밉다. 증오한다. 내 마음도 모르고 사랑에 빠진 그녀는 여자애 얘기를 할 때마다 눈이 반짝이고 얼굴이 발그레해진다. 너무 한 것 아냐? 내게. 혼자 좋아하라고. 내게 말하지 말고. 나는 꾹꾹 참으며 듣는다. 인상이 굳어지는 걸 알 텐데 왜? 그녀는 말을 멈추지 않지? 날 괴롭히기로 작정한 거야. 

기가 막히는 일은, 그녀가 한 술 더 떠서 내게 한 번만 그 애를 만나달라고 부탁한다. 분명 자기보다 그 아이를 더 좋아하게 될 거라면서. 미쳐버리겠다. 좋아, 만나주지. 어떤 계집애인지 한번 보자. 누나가 사랑할 만한 앤지. 아니면 바로 죽여버린다. 감히 내 누날 넘봐? 기다려. 각오하고. 내가 간다. 험한 꼴 당하고도 그리 선한 척하고 사나 보자. 그 여자애 때문에 결전의 날까지 잠을 잘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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