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나를 모르는 나의 이야기
금요일 저녁 친구와 약속이 있었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에서 요즘 읽고 있는 책을 자연스럽게 꺼내 들었다. 인터넷 서점 MD로 살아가는 작가는 육아와 회사 일에 시간을 다 빼앗겨도 아주 짧은 틈을 활용해 책을 읽었다. 그 앞에서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그는 책을 위해 시간을 쪼개고 쪼갰다. (물론 다른 삶을 쪼갤 수 없으니)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이 휴관된 이후 아직 반납하지 못한 책 7권과 보고 싶어서 구매까지 한 책들 중 딱 한 권을 빼고는 모두 '에세이'였다. 거기다 <망생의 밤>이라는 제목 때문에 당연히 지망생의 에세이겠거니하고 산 책이 '소설'이라는 이유로 아직 10페이지에서 넘어가지를 못하고 있다.
"나 요새, 에세이만 주구장창 읽고 있어."
"그래? 나는 남 얘기는 못 보겠어. 난 브런치에도 내 글만 쓰고 쏙 빠져나온다."
친구도 글을 쓴다. 그리고 읽는다. 그녀와 만나면 최근에 서로 읽은 책들과 유행하는 소설(다행히 최신 유행에 맞춰 소설을 간간히 읽기는 한다) 이야기를 하면서 지식과 감정을 공유한다. 독서모임까지 코로나로 연기되니 내가 정말 소설을 멀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난 허구의 이야기는 읽히더라. 근데, 진짜 삶은 못 읽겠어."
"나는 요새 다른 사람들 삶을 보면 위로를 받나 봐."
우리는 카페에 앉아서 서로의 책을 꺼내고 웃었다. 취향이 너무 다른 우리는 각자 보는 드라마도 너무 달라서 서로의 취향을 비웃으며 깔깔 웃었다.
"나는 북커버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내가 원초적인 동화나 고전 소설을 읽을 때는 쓰고 싶더라,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다 힐끔힐끔 쳐다봐."
"맞아. 그럴 때 있지."
아동문학을 전공하면서 학교 가는 길, 스터디 가는 길에 무조건 동화책을 달고 살았다. 그럴 때면 책 속에 빠져들기까지 온갖 시선을 다 참아낸 후에야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왜 남이 읽는 책에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 꼭 어려운 철학책을 읽어야 훌륭한 사람인 것도 아닌데 (하지만 그 사람의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요새의 나는 그렇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울고 웃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자극을 받기도 한다. 제목을 나열해만 해봐도 내가 지금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확연히 보인다.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시간은 없고, 잘하고는 싶고>, <아무튼, 술>, <안 느끼한 산문집>, <긍정의 말 습관>,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오랫동안 내가 싫었습니다>
나는 지금 조금 더 건강히 살고 싶고,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는 내가 이 상황에서 조금 더 행복하길 바란다.
얼마 전, 인스타의 알고리즘 추천으로 인해 본 가구 공방을 보면서 또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나, 정말 좋아하는 색이 있나?"
그 가구 공방의 사장님은 여성분이었다. (가구 만들기 수업을 4번 정도 듣고 나서, 난 할 수 없다고 단정한 일이기도 해서) 대단하다고 느꼈다. 샌딩이나, 수치를 재는 일이 내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공방 사장님은 민트색을 너무 좋아해서 가구의 모든 테마는 민트색을 위주로 디자인되었다. 다들 가장 좋아하는 색을 고르라고 하면 딱 한 가지 꼽을 만한 색이 있다니.
가끔 내 필통을 보면 놀랄 때가 있었다. 인생에 단 한 번도 '주황'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주황색 볼펜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왜인지 몰라도 주황색 펜은 꼭 사게 된다.
그렇다고 '난 주황색이라면 다 사고 싶어!'가 아니다. 사업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인디핑크도 그렇다. 사람들은 뉴아씨는 '핑크'잖아요.라고 말하지만 핑크를 정말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 색을 좋아하는 걸까. 그만큼 좋아하는 일이 있을까.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