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김광석

by 돌콩마음


'시위'라는 말보다 '데모'라는 표현이 익숙했던 나의 대학시절.

지금도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 최루탄으로 하루하루가 힘들었던 지나간 나날들이 떠오른다.


출처 - 개미뉴스


episode 1

나는 운동권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위를 해 본 기억은 없다.

하지만 1987년 그 해는 운동권 여부와 상관없이 전교생이 시위에 참여하는 날들이 많았다.

나는 수업이 끝나면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냈는데 그날은 힘겹게 선점한 나의 소중한 자리를 포기하고 시위에 참여했다.


어깨동무를 하고 전진하던 모든 학생들이 정문을 통과하기 바로 직전, 밖에서 대치하고 있던 전경들이 학교를 향하여 최루탄을 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최대한 버텼지만 계속되는 최루탄 발포에 후퇴를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눈물범벅이 된 채 정신없이 뛰었다.

이미 여기저기 퍼진 최루탄 가루 덕에 모든 학생들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물에 콧물까지 흘러나왔지만 손수건으로 지그시 누르는 정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비벼대면서 닦거나, 코를 푸느라 힘을 줬다가는 그 따가움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학교 전체가 최루탄에 휩싸여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졌다.

우리들은 학교 안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언덕을 향하여 뛰어 올라갔다.

간혹 몇몇 무리들이 분위기 내보자며 막걸리를 사들고 올라가거나, 체력단련을 위한 장소로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평상시에 그 언덕을 오르는 학생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언덕을 향해 달려갔던 바로 그날, 그곳은 서 있을 자리 하나 찾기도 힘들 만큼 수많은 학생들로 붐볐다. 그곳은 비록 낮은 언덕에 불과했지만 최루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임에는 분명했다.

피부의 따가움과 숨쉬기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갈 무렵, 어딘가에서부터 울려 퍼지기 시작한 그 노래는 순식간에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


김광석의 <광야에서>.

사실 그 당시 우리가 따라 부르던 <광야에서>는 성균관대 음악 동아리인 '노래사랑'에 의해 처음 불린 곡이라고 하는데 이후 학생 운동을 통해 계속 이어지게 되었고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안치환과 김광석의 앨범 발매로 대중화된 곡이라고 한다.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김광석의 곡이 담겨 있다.

이 노래는 민주항쟁과 최루탄의 기억뿐만 아니라 같은 날 일어난 또 하나의 기억을 소환해 준다.


episode 2

우리가 최루탄을 피해 언덕으로 올라갔던 바로 그날,

우리는 모두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는 뭉클함으로 <광야에서>를 열창했다.

노래가 끝나고 잠시 장중한 분위기에 모두가 침묵했던 그때,

멀리에서부터 수군거리는 말들과 웃음소리가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학교가 아수라장이 되기 전 우리는 정문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학생들 중 몇몇은 손에 돌을 쥐고 있었는데 이는 정문 앞에서 대치하고 있던 전경들에 대한 일종의 협박용 몸짓이었던 것 같다.

이 날의 사건은 우리 과 여학생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날 그 친구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손에 돌을 쥐고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의 무리가 정문에 가까워지자 위협을 느낀 전경들이 첫 최루탄을 발사했고 열 맞춰 걸어가던 학생들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친구 역시 손에 쥐고 있던 돌을 던졌는데 그 돌이 전경들이 아닌 3~4줄 앞에 서 있던 남학생의 머리에 맞은 것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시위에 참가한 사람이 시위에 참가한 또 다른 이의 머리를 가격하게 된 것이다.

그 친구의 체력장 던지기 점수는 평균 이하라 짐작하고도 남는다.

슬프고도 웃긴 이 이야기는 <광야에서>의 여운에 휩싸여있던 우리 모두에게,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안겨준 작은 선물이었다.


episode 3

김광석 노래를 듣다 보면 생각나는 친구가 또 한 명 있다.


우리 학교 뒷문에서 무척이나 가까운 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이화여대는 그 당시 강의를 빼먹고 바람 쐬고 오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우리는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꿀꿀해서, 날이 너무 좋아서, 날이 흐려 우울해서 라는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붙이며 그렇게 강의실 탈출을 감행했다. 우리는 무사탈출을 자축하며 뒷문을 향해가는 잔디밭에서 깔깔거리며 춤을 추기도 했다.

당시 최고로 유명했던 오리지널 떡볶이와 오징어튀김을 먹고 우리는 이대 앞 쇼핑을 하곤 했다.


하루의 강의가 모두 끝난 어느 날, 그 친구가 먼저 가보겠다며 책가방을 챙기더니 내게로 다가와 귀에 대고 얘기한다.

"나 김광석이랑 소개팅 해."

나로서는 아주 쇼킹한 일이었다. 내 친구가 연예인과 소개팅이라니....

하지만 그 친구라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그 친구는 '문과대 3대 미인' 안에 들어갔을 정도로 외모가 출중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만남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소개팅은 여학생들 사이에서 큰 이슈가 되었다.

나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는 문득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 본다.

그 당시 그 친구가 김광석을 계속 만났더라면, 그래서 좋은 결실을 맺었더라면, 가슴 절절한 그의 음악을 조금은 더 오래도록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지금은 좋은 사람의 아내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을 그 친구를 생각하면 해서는 안될, 말도 안 되는 상상이겠지만 말이다.


보고 싶다. 친구야~~


https://youtu.be/ApVQJo5JS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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