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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Mar 01. 2024

오늘 생일이신 분? 저요

Happy birthday to me!

오늘은 삼일절이다.

그와 동시에 나의 생일이기도 하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과 언니, 남동생과 함께 생일파티를 했었다.

언니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 엄마는 매년은 아니지만 중학교에 가기 전까지 두어 번은 생일파티를 열어주셨던 것 같다.

그랬기에 나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친구들을 불러 생일 파티를 할 수 있겠지 하고 내심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삼일절은 계속 빨간 날이었으며 다음날이 3월 2일이라는 것은, 하루 전인 3월 1일에는 반드시 새 학년을 위한 마음의 준비 (당시 많은 부모님들께서는 새 학년 전날이니 밖에 나가 놀지 말고 집에서 진득하니 책상 앞에 앉아 새 학년을 위한 각오와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었다)와 더불어 학용품이나 새 책에 대한 완벽한 준비가 이뤄져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2월 말부터 3월 1일까지는 학교 앞 문방구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연필과 공책, 지우개, 책받침, 물풀(당시엔 딱풀이 없었다), 컴퍼스, 각도기 등등.

그리고 마지막엔 책을 보호할 포장지(요즘의 예쁜 포장지가 아님)와 비닐을 샀다.

집으로 돌아와 각필통에 이것저것 집어넣고 공책과 함께 책가방에 먼저 넣어둔다. 

그다음은 대망의 책꺼풀을 싸기. 우리는 삼 남매였으므로 한 방에 각자의 새 책과 포장지, 비닐을 다 펼치면 방안은 전쟁터가 되었다. 바닥에 앉자마자 우리는 양다리를 90도로 벌려 자기 구역을 만들었다. 상대방의 발이 움직여 그 각도가 커지기라도 하면 나머지는 자신의 양 발에 잔뜩 힘을 주면서 기싸움을 했었다.

다른 방도 있었는데 왜 굳이 그렇게 한 곳에 모여했을까를 생각하면 정답은 재밌었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를 통해 사라져 가는 문방구(문구점)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우리 때만 해도 특별한 준비물이 있는 날이면 전날 오후 느지막이 문방구에 가서 미리 준비해 놓거나 아니면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밥도 안 먹고 달음박질하여 이미 늘어서 있는 긴 줄에 합류하고는, 행여 내 앞에서 "얘들아 다 팔렸어!" 하는 주인아저씨의 소리가 들릴세라 마음 졸이기가 일쑤였는데 요즘은 학교에서 대부분의 준비물을 마련해 주기 때문에 문방구를 찾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만 간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런 준비물이 아니더라도 노트나 필기류는 문방구보다 마트 혹은 전문 문구점에서 사는 경향이 있으니 문방구는 점점 더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문방구에 관한 추억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음에 그리움이 더해진다.


아무튼 위의 이유들로 3월 1일 생일파티를 저 멀리 보내버린 초등학생 나는, 태극기를 달며 나의 생일소원을 그렇게 태극기에 빌었었다.

나는 3월 1일이 내 생일이라는 사실이 싫었다.


대학생이 되었다. 전세 역전.

대학생인데 내 생일이 빨간 날이라는 건 축복이었다.

그 시절의 3월 1일은 초중고때와는 달리, 다음날 새 학년이 되어도 친구들은 바뀌지 않았으며, 중간고사의 압박에서도 조금은 벗어나 있는 날이었기에 그야말로 맘 편히 친구들과 놀 수 있는 날이었다. 

빨간 날이라 뭐 하며 시간 보내나 했는데 구제해 줘서 고맙다며 친구들은 생일인 나보다 더 행복해했다.


그렇게 즐거운 생일을 보냈던 나였는데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 나니, 나의 생일은 다시 하루종일 육체적 노동에 시달리는 날로 탈바꿈했다. 

아이들의 학교도 쉬고 놀이방도 쉰다. 생일이 아닌 날보다 더 힘들었던 생일들이 지나갔다. 걱정 없이 놀고 마시던 이전의 생일이 가끔은 그리워지기도 했다.


이젠 그 아이들도 자라 독립을 했고, 빨간 날이 생일인 엄마 덕에 출근을 하지 않고 집으로 달려온다.

음식점 예약도 알아서 해주고, 한 녀석은 이미 지난 주말에 미리 선물을 해줬다.

오늘 저녁 외식을 하고 집으로 들어오면 케이크에 어울리는 와인 한 병을 꺼내 각자도생 하고 있는 그들의 삶이 어떤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다.


앗! 놓칠 뻔했다.

드디어 35년 만에 남편이 미역국을 끓여줬다.

물론 몇 년 전부터 압력을 가한 내 성화에 못 이겨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젯밤 잠들기 전 미역과 고기를 챙기던 남편의 모습에 살짝 감동을 받았다. 아침이 되어 주방에 들어선 남편은 자신이 다 알아서 할 테니 나가있으라고 얘기한다. 어디서 오는 자신감일까?  역시나 잊을만하면 불러댄다. 이건 어떻게 하는 건가, 소고기는 언제까지 볶아야 하나, 간은 뭘로 하나 질문이 끝이 없다. 하지만 "내가 할게."라고 말하는 순간, 평생 남편이 끓여주는 미역국 한번 못 먹게 될까 봐 고개를 끄덕여 가며 "잘하네."를 연발한다.


아침 식사를 시작하자마자 둘째가 "음~ 미역국 맛이 예전과 조금 다른 것 같은데?" 한다.

장금이다. 

"응~ 아빠가 오늘 엄마 생일이라고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여줬네~"

"맛있지?" 잔뜩 기대하며 물어보는 아빠에게 

"맛은 있는데 깊은 맛이 덜한 듯, 하지만 처음 한 거 치고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

그리고는 남아있는 국물까지 후루룩 다 마셔준다. 늘 국을 남기던 아들이었는데 말이다.

요 녀석, 멘트 하나로 아침부터 엄마와 아빠 기분을 up 시켜준다.


하루종일 이렇게 행복한 생일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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