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콩마음 Feb 21. 2024

엄마 땜에...


최근 엄마가 계속 아프셨다.


11월 말에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연락이 와서 엄마가 계신 마산에 내려가 퇴원시켜 드리고 올라왔는데, 보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성당 계단에서 미끄러지시면서 팔목 뼈가 부러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행히도 여의도 성모병원에 수술일정이 빨리 잡혀, 수술을 받으시고 퇴원하시어 우리 집에 머무셨다.

나의 생활 템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신다. 개운하게 빨리 씻고 싶으실 터라 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실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부터 샤워시켜 드리고 옷을 입혀드린다. 그다음은 내 차례.

서둘러 아침밥을 준비한다. 엄마가 계시지 않을 때는 늦은 간단 아침을 먹을 때가 많았는데, 엄마는 일찍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시기에 최대한 서둘러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남편, 엄마와 함께 셋이서 식사를 하고 나면 커피 한잔으로 긴 수다를 떤다.

그러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바로 점심이다. 매번 깜짝 놀란다. 또다시 식사를 준비하고 먹고 치우고. 그래도 점심에서 저녁식사까지는 좀 여유가 있다.

낮에는 엄마가 심심하실 것 같아 드라마를 틀어드린다. 요즘 아프시는 바람에 드라마가 많이 밀렸다 하시며 제목을 말씀해 주신다. OTT채널로 제목을 검색하고, 보시기 시작할 회차를 찾아드리고 나면 나는 소소한 집안일들을 한다.

그러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나는 또 저녁 준비를 한다. 그렇게 반복되는 우리의 날들이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정리를 끝낸 후, 이미 TV를 보고 계신 엄마 옆으로 다가가 뭐 재미난 거 없나 하며 리모컨을 손에 쥐니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광고 끝나고 그거 해" 하신다.  밀린 드라마를 다 따라잡으시고 저녁부터는 본방송을 보실 수 있다며 해맑게 웃으신다.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옆에서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던 나는 깜짝깜짝 놀란다. 드라마 속 다투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시선을 향하지 않을 수가 없다. 괴성에 따귀 때리는 건 기본이다.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다.

"저 사람들 왜 저래?"하고 한마디 내뱉은 건 나의 큰 실수였다. 갑자기 엄마가 곁으로 바짝 다가오시더니 드라마 줄거리를 얘기하신다. 이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저 사람들이 예전에 이런 일들을 했어. 정말 못된 사람인거지, 아 저 사람은 이 사람의 자식인데 이러쿵저러쿵~

알고 싶지 않은데 계속 알려 주신다.

엄마는 본방송을 보시는 것보다 내게 줄거리를 얘기해 주시는 게 더 신나신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드라마 이야기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동생집에 가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결의 드라마 얘기를 계속 들으며 거기에 맞는 즉각적인 반응을 계속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꽤나 큰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드라마로 인해 지쳐갔다.


동생 집으로 엄마를 보내드린 다음날 나는 늦잠을 잤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는 나의 몸은 이제 누군가를 돌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달라진 생활 패턴에 나의 몸이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적응한 게 하나 있었다.

엄마가 가신 바로 그날 저녁,

엄마의 그 드라마를,

좋아하지도 않았던 그 막장드라마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던 바로 그 드라마를 내가 스스로 찾아서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엄마 땜에.....


그렇게 나는 그 드라마의 결말까지 함께 하고야 말았다.


엄마 땜에.

작가의 이전글 겨울밤의 상쾌함을 선물로 받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