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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Apr 12. 2023

각막이 찢어졌다..

불편함이 감사로

                                                                                                 사진: Unsplash의 David Travis



안경은 내 몸의 일부분이다.


내가 안경을 사용하기 시작한 때가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이었으니 이제 거의 45년을 함께 해 온 셈이다.

그 당시는 안경을 쓰는 사람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 나는 뭔가 남들과 다르다는 묘한 기분, 조금은 특별한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다닌다는 색다른 기분을 느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안경 생활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시절까지 이어졌고 그 과정 속에 나의 시력은 점점 더 나빠져 갔다.

안경 렌즈는 갈수록 더 두꺼워졌으며 그 무게감도 커져만 갔다.

그 무렵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던 걸까,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나는 과감히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에 도전했다.


실패.......


각막이 찢어졌다고 다.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병원을 나서는데 안구와 눈꺼풀 사이에 굵은 천일염이 끼여있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움직일 때마다 그 소금덩어리가 나의 소중한 안구를 긁어대는 것 같았다.


요즘처럼 여러 가지 상황을 만족시켜 줄 만큼  다양한 종류의 렌즈가 있었던 시절도 아니었고,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콘택트렌즈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들은 터라, 나는 내 눈을 원망한 채 다시 이전의 안경 생활로 돌아갔다.

찢어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나의 짧았던 콘택트렌즈 생활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나는 그 고통의 후유증으로 두 번 다시 렌즈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눈은 점점 더 나빠져갔고 근시와 난시의 바닥을 헤매는 지금의 시력을 갖게 되었다.

기분 좋게 시작한  안경과의 동거는 반복되는 추위와 더위를 겪을 때마다 짜증스러운 불편함으로 내게 다가왔다.


근시가 심한 사람은 노안이 늦게 온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온 터라 내심 그것이 진실이기를 기대했으나 그 또한 속설에 불과했다.

간혹 깜빡하고 돋보기를 휴대하지 못했을 때  친구들끼리 돋보기를 빌려주기도 하고 빌려 쓰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나, 나의 노안 시력은 근시만큼이나 나빠, 나의 돋보기를 빌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상생활을 할 때에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휴대폰을 볼 때에는 무조건 안경을 벗어야 했고,  컴퓨터로 업무를 볼 때에는 컴퓨터 전용 돋보기를 써야 했으며, TV를 보거나 운전을 할 때에는 다초점 안경을 사용했다.

그나마 다초점 렌즈로 바꾼 후 네비까지 잘 볼 수 있게 되어 운전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차를 운전해서 집으로 가던 어느 날이었다.

빨간색 신호를 확인하고는 브레이크를 밟은 후, 늘 그랬던 것처럼 오가는 사람들과 눈에 들어오는 상가 간판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는 것을 보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었을 때

'아!  내게 초록과 빨간색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 순간 울컥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말이 입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감사합니다."


한여름 무더위에 흘러내리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한겨울 추위에 김서린 안경을 연신 닦아내면서,

또 나는 여전히 툴툴거릴 테지만,

안경을 통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몹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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