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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Apr 10. 2023

익숙해지는 것과 길들여지는 것

                                                                                                사진: Unsplash의 Alexis Chloe



전형적인 I성향을 지닌 나는 사람들과의 첫 만남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낯섦과 어색함으로 시간을 채워 나가야 한다는 마음의 무거움은 극도의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몸과 마음을 굳어지게 만든다.


그렇다면 E의 성향을 가진 사람은 어떨까?

E의 성향을 가진 그들에게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라는 것이 어쩌면 새로움과 설렘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켜 불편함은커녕 기대감마저 갖게 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I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나 수긍이 가는 바다.

하지만 출발점에서의 이런 차이가 시간이 좀 흐른 뒤인 미래의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두 성향의 차이는 단지 속도의 차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금방 익숙해지느냐 아니면 천천히 익숙해지느냐 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익숙함은 편안함과 공감이라는 과정을 거쳐 친구라는 큰 선물을 안겨주기도 한다.

첫 만남에서 느꼈던 낯섦과 어색함은 어느덧 사라지고 어느새 서로의 속내까지 함께 나누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듯 관계에 있어서의 익숙함이라는 것은 편안함 바로 그 자체인 것 같다.

편안하기에 마음을 열 수 있고, 편안하기에  때론 의지할 수 있고, 편안하기에 자주 생각나는...


하지만 이 익숙함이라는 것이 장점만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익숙함에 길들여지다 보면 간혹 상대방과의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서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여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남겨 주기도 한다.


익숙해지는 것과 길들여지는 것은

비슷한 의미인 듯하면서도 약간의 차이가 느껴진다.


익숙해지는 것은 스스로가 익숙함에 젖어든다는 느낌이고,

길들여지는 것은 길들이려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의해 지배당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길들이게 하는 주체가 존재해야 하는 것이기에  조금 더 부정적으로 들리는 게 아닐까?


몇 년 전 TV에서 폭력 남편과 매 맞는 아내에 관한 다큐 프로그램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런 내용이 이슈가 될 때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바보같이 저렇게 맞고 살지?', '이혼을 해야지. 왜 저런 남편과 계속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나 역시도 그랬고.

하지만 내가 방송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다소 쇼킹했다.

폭력 남편의 아내는 처음에는 매 맞는 것이 두려워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러한 생활이 지속되는 가운데 매 맞는 것에 길들여지면서 매 맞지 않는 날이면 '왜 오늘은 안 때리지?' 하면서 오히려 불안해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쇼생크 탈출>은 길들여짐이 만들어낸 가장 비극적 결말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브룩스라는 인물은 쇼생크 교도소에서 50년간을 살았던 인물이다.

삶의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낸 셈이다.

노인이 된 그는 가석방 소식을 접하자 기뻐하기는커녕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 나머지 동료 죄수에게 흉기를 휘두르게 되는데 이는 가석방을 취소시키고자 그가 일부러 벌인 소동이었다.

50년이라는 긴 시간을 감옥에 갇혀 살았던 그는 바깥세상에서의 일상의 자유를 미치도록 갈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자유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게 되자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길들여짐은 그로 하여금 자유 없는 속박된 삶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만들었고

오히려 자유로운 감옥 밖의 삶에 대해 커다란 두려움을 갖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결국 그는 그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하고 만다.


 Shawshank Redemption(1994)



출소 직후 올라탄 버스에서 어린아이처럼 손잡이를 꽉 잡고 있는 브룩스의 표정이 떠오른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표출된 것이었을까? 그의 눈빛은 모든 것을 체념한, 아니 죽음을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Shawshank Redemption(1994)   


'나'를 떠올려 본다.

익숙함에 길들여져 선 넘은 말과 행동을 하고도 변명과 합리화로 일관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나 스스로가 길들이는 주체가 되어 누군가의 자유를 억압한 적은 없는지....

  

이 순간 가족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무슨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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