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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May 03. 2023

잘하는, 하고 싶은, 해야 하는 일 1

첫 번째 이야기 - 내가 잘하는 일

                                                                                                   사진: UnsplashEric Masur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을 읽던 중 잠시 멈춰 선 구간이 있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 황근배가 고교생 민규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는 장면이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다음 세 가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내가 잘하는 일을 알아야 하고,

그다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알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교집합을 알아내기만 하면 나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교집합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나 역시 살아오면서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 적이 많았다.

하지만 늘 생각만 하다가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묻어왔던 것 같다.

오늘 역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에게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내가 잘하는 일


아.... 시작부터 막힌다.

청년이었을 무렵에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던 질문이었지만 그래도 그때에는 혹시 이거? 아니면 저건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한 무언가가 있기도 했었는데, 나이와 반비례하는 자신감 덕분에 스스로 잘한다고 내세울 만한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우선 나의 취미가 무엇인지 떠올려본다.

재미 삼아 혹은 관심에 의한 욕구로 시작한 취미생활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남들보다 두각을 나타냈다든지, 그래서 전문성을 갖게 되었다면 그게 바로 나의 특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퀼트

'유행'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패션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동조현상은 어느 분야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 집안 분위기를 결정짓는 인테리어, 그리고 취미활동에서도.

그렇게 유행은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언제나 존재한다.


내가 삼사 십 대에는 퀼트, 비즈공예, 알공예, 가죽공예가 유행이었는데 어느 것이 먼저고 어떤 것이 나중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새로운 것이 등장하면 기존의 것은 밀려나고, 그 새로웠던 것 역시 더 새로운 것에 밀려나는 현상들이 반복되곤 했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 흐름에 동참해 퀼트를 시작했다.



나의 소중한 작품, 퀸사이즈 침대 이불



오래전 이야기다. 삼십 대를 바라보는 첫째 아이가 네다섯 살 무렵이었으니.

그 당시 나는 꼼꼼한 성격에다 엄마를 닮아 손재주가 있었는지, 퀼트 강의를 듣고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우와 이걸 내가 만든 거야?'라고 스스로 감탄할 만큼 꽤 괜찮은 솜씨를 발휘했던 것 같다.

그렇게 기초반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작품인 침대이불을 완성하면서 나는 마침내 고급과정까지 수료하였다.


무언가에 열중하다 보면 중독에 빠지는 시기가 있는데 나 역시 그런 시간이 있었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면 나는 어김없이 바늘을 잡았는데, 시작하기 전 그날의 목표를 정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나는 그 목표치를 넘어 새벽까지 바느질을 하곤 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의 특기는 퀼트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둘째 아이 출산 후부터 더 이상 퀼트를 하지 못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이와 생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은 터울 진 아이를 돌보느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하루를 보냈고,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피곤함에 아이를 재우다가 내가 먼저 잠들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둘째가 어느 정도 자라면 다시 시작하리라 마음먹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모든 취미활동이 그렇듯 너무 오랫동안 쉬다 보면,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작은 소품이라도 만들어보려고 벽장에서 잠들고 있었던 퀼트 용품들을 꺼내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눈은 침침해 잘 보이지도 않고 몇십 분 계속하고 나면 온몸이 뻐근하여 다음날까지 컨디션 회복이 되질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예전의 정교한 솜씨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족도는 마이너스. 이제 퀼트는 더 이상 나의 특기라 할 수 없게 되었다.


*걷기

다시금 머리를 쥐어짜본다. 내가 잘하는 그 일이 무엇인지...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문득 떠오른 사실. 그래 나는 잘 걷는다.

보폭도 꽤나  편인데 오래도록 잘 걷는다.

나는 체력장 100m 24초의 놀라운 기록의 소유자다.

체력장을 겪은 세대의 대화 속에서 나는 나보다 더 늦은 기록을 가진 사람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

그야말로 달리기는 꽝인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걷는 속도가 빨라 친구들로부터 '걷는 게 뛰는 것보다 빠른 아이'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살아왔다. 맞는 말이다. 가끔은 내가 왜 뛰어가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걸어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걸음이 빨랐던 나는 가족, 친구, 그 누구와 걷든지 늘 빠른 걸음으로 인해 뒤쫓아오는 이들을 숨 가쁘게 만들곤 했다.


나는 둘째 아이와 자주 산책을 했었는데(사춘기 제외) 똑같은 길을 걸으면서 나날이 달라지는 아이의 걸음 속도에 으로 흐뭇해했던 기억이 난다.

늘 "엄마 같이 가요!"라고 외치며 숨 가쁘게 뒤쫓아와서는 "엄마는 걸음이 너무 빨라요."라고 얘기하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자 나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겠다며 보폭을 넓게 하여 성큼성큼 걸었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어느새 나를 앞서 걷고 있었다.

낑낑거리며 쫓아오던 그 어린아이가 어느새 쑥쑥 자라 나를 앞질러 걸어가는 모습이란 내게 큰 기쁨이었고 감사함이었다.

아이는 어느새 자라 직업 군인이 되었고 어쩌다 함께 걷는 순간이면 느려진 엄마의 걸음 속도에 맞춰주느라 어깨 손을 하고 걸어준다.

가끔은 어깨에 얹은 아들의 손이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고, 아이의 걸음이 빨라진 만큼 나의 걸음은 느려졌음에 묘한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노화 탓인지 오래 걸을 때면 이제 다리도 아프고 골반도 뻐근해 힘들지만 그래도 아직 이 정도면 비교적 잘 걷는다고 생각한다.

그래 하나 발견. 나는 잘 걷는다.


*글쓰기

그리고 또 하나. 글 쓰는 일

잘하는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자주 글을 쓴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감정들을 끄적거리기도 하고, 책을 읽다가 어느 한 단어나 문장에 꽂히면 그것에 나를 대입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는 글로 남긴다. <불편한 편의점>을 읽다가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자주 글을 쓰기는 하지만 잘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가끔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다가 유치하다는 생각에 끝까지 읽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떨 때는 창피함을 느끼기도 하니 말이다.

글 쓰는 일은 '잘'은 아니지만 '자주' 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잘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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