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니편이 되어줄게> 커피소년

by 돌콩마음

2022년 2월 아들이 신병훈련소에 입소했다


코로나 확진자가 20만 명에 달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들을 군대에 보낸다고 생각하니 안 그래도 짠한 마음에 더욱 심란해진 마음이었다.

처음이다 보니 행여나 빠뜨린 게 있을까 매일 반복해서 확인하였는데, 가져가도 되는 항목들에서 꼭 필요한 것만 가져가겠다는 아들과, 가져가서 버리더라도 필요할지 모르니 챙겨가라는 엄마의 실랑이 역시 집을 떠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드디어 입소하는 날 우리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여전히 캄캄한 하늘을 바라보며 진주로 출발했다.

아들은 가는 내내 긴장한 탓인지 말이 없었고 그런 아들과 함께하는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남편과 나는 군대와 아무 관련 없는 일상의 얘기를 나누며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하늘과 땅만 보이던 내 시야에 <진주>라는 이정표가 들어온 것이다.

한두 시간 후면 아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짠해왔다.

내 마음도 이런데 아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우리는 각자의 마음을 숨긴 채 점심식사 할 곳을 찾아 주위를 살폈다.

든든하게 먹여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갈비를 먹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고, 아들도 그렇게 생각을 한 건지 좋다고 하여 한우 갈빗집으로 들어갔다.

몇 점 먹는가 싶더니 갑자기 아들이 잘 넘어가질 않는다며 그만 먹겠다고 했다.

순간 힘조절이 안되었는지 그렁그렁 차 있던 눈물이 새어 나오고야 말았다.

활짝 웃으며 보내려고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군대 내 차량 출입이 허용되어 정문을 통과한 우리는, 안내에 따라 계속 직진하고 있었는데 군인 한 명이 차 앞으로 다가와 아들에게는 내리라고, 우리에게는 차에서 내리면 안 되니 곧장 온 길로 돌아 나가면 된다고 얘기해 주었다.

차에서 다 함께 내려 포옹 한번 진하게 하고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리라 생각했던 나의 작은 소망은 한순간 날아가 버렸다.

아들은 황급히 짐가방을 챙겨 차에서 내렸고 우리는 열린 창문을 통해 겨우 손바닥 한번 마주치고는 돌아 나와야만 했다.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 아들의 뒷모습은 점점 작아져 갔고 그 모습이 내겐 너무 측은해 보였다.




코로나의 기세가 꺾기지 않던 때라 그 당시 군대에 입소한 모든 청년들은 2주간의 격리기간을 거친 후에야 훈련에 임할 수 있었다.

단체 격리도 끝나 방배정을 받았을 테고 룸메이트들하고 잘 지내고 있으려나 생각할 무렵 아들의 휴대폰번호가 찍힌 전화벨이 울렸다. 입소 후 한 달 동안은 전화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공지가 있었기에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그래서일까 번호를 본 그 찰나의 순간 가슴이 철커덕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일일까.

"엄마..."

아들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단체격리가 끝나고 방배정을 받아 4명이 함께 생활하게 되었는데 한 명이 코로나 확진이 되어 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머지 3명은 일주일간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각각 독방으로 격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모님과 지인에게 전화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 허용되었다며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 얘기하다가 갑자기 끊을 수도 있다고 미리 말해 주었다.

아들은 혼자 독방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군생활을 전혀 모르는 나는, 맘 편히 갖고 낮잠도 좀 자고 잘 쉬라고 얘기해 주었는데 그건 정말 나만의 야무진 생각이었다.

아.. 우리 아들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군인이기에 낮잠을 잘 수도, 누워서 편하게 쉴 수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하루 종일 대화할 사람도 없이 혼자 힘들게 보냈을 아들을 위해 뭔가 답답함을 풀어줄 수 있는, 관심을 가질만한 대화거리를 떠올리려 노력했다. 통화하는 그 순간만이라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잠시 후 아들은 핸드폰을 반납해야 한다며 내일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정말이지 마음이 너무 아파서 엉엉 울었다.


아들은 점점 지쳐가는 것 같았다.

하루를 간신히 넘겨 보냈는데 그렇게 일주일을 더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아들을 가장 힘들게 했으리라.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나는 아들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1초라도 빨리 받으려고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전화를 받으면 최소한의 안부만을 확인하고, 최대한 빨리 끊으려고 노력했다.

나와의 통화 시간을 줄이면 친구들과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고, 그 시간들이 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나이 때는 친구가 최고 아니던가? 친구랑 얘기하면서 아들의 스트레스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어느덧 pcr검사가 목전으로 다가왔다.

제발 음성이 나와야 할 텐데.. 만일 양성으로 나온다면 병원으로 옮겨져 또 격리를 시작해야 한다.

물론 병원이 독방보다는 덜 답답한 환경이 되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될 거였다면 지난 일주일간의 격리생활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이미 훈련을 시작한 동기생들과의 일정에 격차가 벌어져 동기들과 같은 날에 임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무엇보다도 세 번의 격리생활을 하게 된다는 사실은 아직 훈련을 시작하지도 못한 아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음성, 반드시 음성 이어야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수신버튼을 눌렀다.

"엄마!, 음성!"

오랜만에 듣는 아들의 밝은 목소리. 짧디 짧은 그 외침에 마음속으로 감사합니다를 세 번 정도 외친 것 같다.

길었던 한 주가 그렇게 지나갔다.




커피소년의 <내가 니편이 되어줄게>.

2013년에 발매되었다는 이 노래를 나는 작년 초에 처음 들었다.

<프로듀사>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듣게 되었는데 그 드라마 역시 2015년에 방영한 것이니

나는 오래전에 발매된 곡을, 오래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를 통해, 비로소 2022년 초에 처음 접하게 된 것이다.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하루하루 그리움으로 가득 찼던 바로 그때에 그 노래는 살며시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자식의 편이 되어주지 못한 엄마였다.




아들의 휘몰아치던 사춘기도 잠잠해져 갈 무렵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고등학교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가족은 그날 모처럼 다 함께 시간을 맞추어 쇼핑몰에서 만나기로 했다.

유명 브랜드의 할인행사가 있어 아이들에게 옷 한 벌씩 사주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저녁을 간단히 해결한 후 행사매장으로 내려갔다.

할인행사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남편이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온다고 하여 우리 셋은 먼저 행사장으로 들어가 각자가 원하는 것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아들이 서 있는 부근에서 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뭐? 아이씨라고? 이게 어디서 어른한테 욕을 하고 난리야? 너 뭐야?"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나의 시선도 소리 나는 쪽을 향했다.

아.......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름 모를 그 사람이 소리 지른 상대가 바로 우리 아들이었다.

그 아저씨가 아들 뒤를 지나갈 때 백팩을 힘껏 밀치고 지나가 아들이 넘어질 뻔했고, 그 순간 너무 놀라 입에서 "아이씨"라는 말이 튀어나와 버린 것이었다.

내가 그 사람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했더니 "이 자식이 나한테 욕을 하잖아요" (자식의 엄마 앞에서 이 자식 저 자식 하는 건 욕이 아닌가?)

그 말을 들은 순간 아들이

"아저씨가 먼저 저를 밀치셨잖아요? 갑자기 넘어질 뻔해서 아이씨라고 말이 튀어나온 거고요. 아저씨가 먼저 저를 밀친 건 왜 사과 안 하세요?"

그때 주위사람들 중 한 명이 그 아저씨가 팔꿈치로 아이를 세게 밀었다는 얘기를 해 주셨다. 화가 났다.

"내가 뭘 사과해? 이런 곳에 가방을 메고 온 네가 애초에 잘못한 거지?"

더 화가 났다.

전후 상황 따지지 않고 아들이 어른에게 욕을 했다면 그건 정말 큰 잘못이라 마땅히 사과를 드리라고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고개를 숙이고 물건을 고르고 있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지나가면서 백팩을 손으로 세게 밀쳐 넘어질 뻔했다면 '아이씨'라는 말은 그저 순간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는 말이지 않은가?


나는 무언가를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멍한 상태로 서 있는데 그 아저씨가 또다시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런데 가방을 메고 온 것부터가 제대로 안되어 있는 거지"

간신히 용기를 내어 "학생이 가방을 메고 온 게 큰 잘못인가요?"라고 말을 했지만 역시나 기어들어가는 떨리는 목소리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조그맣게 내뱉은 말이 그 사람의 귀에 제대로 들렸는지도 의문이다.

화가 나고 무언가 입안에서 돌고 있는 말들이 줄을 섰는데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할 말 다한 상대방이 장소를 빠져나갔다. 거기도 가족이 함께 온 것 같았다. 와이프로 추정되는 어린아이의 엄마가 어린 딸아이의 손을 잡고 나가면서 내게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한마디 외친다. "상대하지 마."


'아이야 네가 자라 고등학생이 되어 쇼핑할 일이 생기면 가방은 절대 매고 오지 마라!

네 아빠 같은 사람이 팔꿈치로 밀쳐 넘어질지도 모르니까.

가방을 메고 온 것부터가 네 잘못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너무 놀라 무슨 말이 입에서 나오려고 한다면 꿀꺽 삼켜버려야 한다!'


출구를 찾지 못한 말들이 목구멍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




군대 간 아들에게 첫 손 편지를 쓸 수 있게 되었던 날,

미리 마련해 두었던 하얀 편지지를 펼쳐놓고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순간 문득 떠오른 그날의 기억.

자신을 향해 있는 수많은 시선 속에서 엄마만큼은 자신의 편이 되어주길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까?

자신의 곁에는 든든한 가족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절실히 느끼고 싶었을까?

그런데 나는 아들을 보호해 주기는커녕 너무나도 모자란 엄마의 모습만을 보여 주었다.

과거에 느꼈던 그 커다란 후회와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다시금 밀려온다.

외로웠을, 그래서 더욱 아팠을 아들의 마음이 느껴져 더욱 보고프고 그리웠던 시간이었다.


나는 펜을 들어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지금까지 편이 되어주지 못해 엄마가 미안했다고

이제는 네 곁에서 큰 힘이 되어주겠다고.


https://youtu.be/geVhoovaKOA

내가 니편이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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