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맑은 하늘을 보니 갑자기 경쾌한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뭔가 도전적인 자세를 취하고도 싶었고~
그래서 골랐다. 패닉의 <왼손잡이>
이적과 김진표의 <패닉>은 1995년 1집 앨범을 발표했다.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내세웠던 <아무도>는 대중에게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수록곡 4번 <달팽이>와 6번 <왼손잡이>는 크게 성공을 거두어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오늘 선곡한 <왼손잡이>는 사회적 약자와 성소수자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 이적이 작사와 작곡을 하였으며 또한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외친다.
편견을 버리고 다름을 인정하라고.
시작부터 경쾌하다.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의 빠른 비트는 음악을 듣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적절한 뜨거움과 기분 좋은 들뜸을 선사해 준다.
나는 왼손잡이다.
내가 태어나 자랄 무렵의 왼손잡이들은 많은 수난을 겪었던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8남매 집안의 맏며느리셨던 엄마는 딸로 태어난 내가 왼손잡이인 걸 아시고 할머니의 눈치를 보셨던 것 같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남아선호사상이 존재했었고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의 편견 또한 깊게 자리 잡고 있었기에 딸이며 왼손잡이인 나는 뭔가 정상궤도를 벗어난듯한 아이로 여겨졌었나 보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왼손잡이인 나를 오른손잡이로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아주 어릴 적 나의 왼손은 뜨개실로 짠 주머니 모양의 무언가로 늘 묶여 있었다.
왼손을 묶어 사용할 수 없게 해 놓으면 자연스레 오른손을 사용하게 되리라 생각하신듯하다.
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의 말씀을 들어보면 나는 오른손을 사용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로지 왼손을 감싸고 있는 주머니를 없애버릴 궁리만 했다고 한다.
오른손을 이용하여 왼손을 싸매고 있는 뜨개 주머니의 코와 코 사이를 벌리려 무진장 애를 썼으며 , 그런 다음 입으로 가져가 뜨개실을 끊으려는 행동을 반복했다고 한다.
엄마와 나는 뜨개질과 뜯기를 반복하며 전쟁 아닌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엄마가 잠시 후회를 하신다. 그냥 놔둘걸 그 당시엔 왜 그랬었는지 모르겠다고.
이것이 어찌 엄마의 탓이겠는가.
나는 자라면서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과 왼손을 사용하는 것에 명확한 구분이 생겼다.
누군가의 가르침이나, 학교 교육에 의해 처음 시작하게 되는 경우에는 오른손을, 어느 누구의 가르침 없이 스스로 알아서 시작하게 된 것은 왼손을 사용했다.
왼손잡이로 태어났으니 타인의 터치가 없는 한 자연스레 왼손을 사용하였으리라.
하지만 몇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칼과 가위, 칫솔을 사용할 때였다.
엄마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그건 오로지 왼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였던가 욕실 거울 앞에 선 나는 혹시나 하며 칫솔을 오른손에 잡았다.
도전! 그러나 참담한 실패였다.
오른손에 잡고 있던 칫솔이 방향을 잃은 채 잇몸을 공격해 피가 흘러내리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오른손 가위질도 실패였다. 종이를 자르기는커녕 컷팅하는 동작과 동시에 종이가 가위사이에 끼어버린다. 여러 번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양손잡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내가 나는 좋았다.
시간의 흐름 속에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은 이제 거의 사라진 듯하다.
'올바르지 않아', '이상해'가 아닌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움직임이 자리 잡은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이제 왼손잡이를 굳이 오른 손잡이로 교정하려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과거에 그런 편견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많을 것이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다.
<왼손잡이 가사>
나 같은 아이 한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 하지 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름에 조금씩 마음을 열어 보자.
그들은 다를 뿐, 아무것도 망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