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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Apr 20. 2023

2. 스트레스, 시동을 걸다.

                                                                                        사진: Unsplash의 Alexander Jawfox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한다.

한 번 친해지고 나면 언제 서먹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변하지만, 친해지기까지가 나한테는 너무나 어려운 숙제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회생활에서는 어떻겠는가.


지금까지 나의 만남은 어느 한 부분에서 교집합이 존재했었다.

신앙의 테두리 안에서 함께 한다는,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의 엄마라는, 비슷한 연배라는, 같은 동네에 산다는, 같은 취미를 갖고 있다는 등등. '비슷하거나' 혹은 '같은'이라는 일종의 동질감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회사는 달랐다.

굳이 찾아본다면 출근부터 퇴근까지 같은 공간에 앉아 있다는 것뿐이었다.

물론 점심식사를 하면서, 혹은 저녁회식으로 술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한순간 조금은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끼기도 했지만 다음 날 출근하면 역시나 또 제자리였다.

여기에는 우리 부부의 나이가 한몫을 한 것 같다. 부인하고 싶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연배이거나 혹은 내가 회사대표의 배우자가 아니었다면, 퇴근 후 수다도 떨고 술 한잔 기울이면서 함께 회사 불만도 얘기하고 맞장구도 쳐가면서 직장동료라는 교집합을 만들어 나갔을 텐데.. 

이미 주어진 현실이 그렇질 못하니 꼰대 소리 듣지 않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우리가 첫 출근을 하기 한 달 전 즈음에 첫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우리는 모두 초년생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각자의 사회생활에 관해 자주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을 무렵 우리는 첫째 아이에게 신입사원의 입장에서 직장상사가 지켜주었으면 하는 점이 무엇인지 조언을 구했다.

회식은 너무 자주 하지 말 것, 하려면 2~3주 전에 미리 알려줄 것, '라떼는~' 사용금지....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하다.

내가 대표의 와이프라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머릿속에 그 사실이 자리 잡혀 있는 자체가 너무나 싫었다.

그것은 언제나 내게 무거운 짐이 되어 나를 힘들게 했다.


우리 회사는 4명으로 출발했다.

남편과 나, 그리고 남녀 직원 각 한 명씩.

남편은 (지금도 그렇지만) 믹스커피만 마셨고, m님은 아예 커피를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원두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람은 y님과 나 둘 뿐이었다. 그렇기에 출근하여 커피를 내리고 퇴근할 무렵 용기를 씻는 일은 우리 두 사람의 몫이었다.

커피 내리는 일이야 기계가 알아서 해주니 커피와 물 보충만 해주면 일도 아니었지만 사무실 내에 수도시설이 없었기에, 커피메이커의 유리 pot를 외부로 들고나가서 씻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솔선수범하자는 차원에서,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위에서 언급한 마음의 무거움을 던져 버리기 위해 pot 씻는 일을 내가 먼저 해 나갔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서로 적절히 번갈아가며 하는 순간이 오겠지라고 생각을 했었다.

y님도 나의 그런 모습을 봐서인지 어느 날인가부터 드문드문 그런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아침에 출근하여 커피를 마시려고 탕비실로 향했는데 전날 함께 퇴근하면서 씻지 못한 커피포트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y님이 먼저 출근해 있었기에 나는 y님이 탕비실을 들어가지 않았나 보다 혹은 깜빡했나 보다 여기고는 pot를 얼른 씻어와 커피를 내렸다. 잠시 후 y님이 일어나 내려진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자리로 가져갔다. 이런 상황은 그날 이후로 여러 번 반복되었고 그때는 정말 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이번에는 커피포트가 머쉰 몸체에서 빠져나와 씻지 않은 채로 테이블 위에 떡하니 올려져 있었다. 뚜껑을 열어놓은 채로. 뭐지? 기분이 묘했다.

씻지 않은 걸 알고 빼기는 했다. 하지만 씻으러 가지 않았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둔 채 테이블 위에 보란 듯이 올려놓았다.

황당했다. 나보고 얼른 씻어오라는 것인가? 그냥 머쉰에 그대로 놓여있었다면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뭐란 말인가?

굳이 빼서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대로 놔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그리고 이 일 역시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출근할 때마다 뚜껑이 열린 채 놓여있는 pot를 보고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의 스트레스가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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