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제 그만하자.

자매라는 선물 8

by 돌콩마음

사진: Unsplash의 Yosuke Ota



1980년대 중후반 잠원동에서의 자취생활이 익숙해져 갈 무렵, 우리 자매는 새로운 놀이에 푹 빠졌다.



당시 모토로라라는 휴대폰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부의 상징으로 일반인은 쳐다보지도 못했던 귀중품이었고 대중화가 이루어진 것은 1990년대 후반이었으니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TV 역시 지상파 방송이 전부였고, 그렇다고 집에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집에서 시간을 보낼만한 것이라고는 독서 그리고 음...


서론이 길었다. 결론은 밤시간에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는 얘기다.

통금시간 10시까지 각자 개인시간(수업, 도서관, 저녁약속, 혹은 술)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씻고 간단한 집안일을 한 후 이부자리에 누워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간혹 약속도 없고 도서관도 가지 않은 날이면 일찍 귀가하였는데 언니와 나의 이른 귀가일정이 겹치는 날이면 우리는 함께 요리를 해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곤 했다. 이런 날은 저녁 설거지에 빨래, 청소까지 다해도 잠자리에 들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다. 우리에게는 그 시간을 때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는 "우리 뭐 하고 놀까?" 하며 함께 생각해 보자 했고 나는 무엇을 해야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부루마블(blue marble)? 그건 부모님이 계신 집에 두고 왔다.

퍼즐? 그건 같이하면 재미없다.


"우리 고스톱 할까?" 언니의 제안에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콜!"


우리는 자취를 위해 본가에서 나올 때 엄마가 직접 만들어주신 말판과 말을 포함한 윷놀이 세트와 화투를 가지고 왔다.

고등학교 때 배웠던 고스톱을 언니와 둘이서 치게 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둘만의 고스톱을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고스톱은 기분 좋게 시작한다.

10원짜리가 오가고 몇 판이 지나가면 서서히 잃는 자와 따는 자가 구분된다.


우리도 처음에는 깔끔하게 끝을 냈더랬다.

돈을 잃은 사람은 돈을 딴 사람에게 "좋겠다." 며 부러움의 눈빛을 보냈고, 반대의 경우 "내일은 네가 따." 하며 웃음을 지어 보이기도 했었다. 그랬었다. 몇 회 정도까지는.


사실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계속 지거나 이기는 경우라도 그 액수는 천 원을 넘지 않았다. 그러니 대부분의 경우 잃어도 몇 백 원이었다. 지금의 물가와 비교하면 얼마쯤 되려나.

하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우리의 수면 시간은 점점 줄어만 갔다.

잃은 자의 그놈의 '한판만'은 한판일 리 없었고, 그 잃은 자가 승리의 기쁨을 맛봐야만 끝이 나는 이상한 행태가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잃은 자가 마지막으로 한 번 이기고 끝낼 수 있는 경우라도 적당히 이겨야만 끝낼 수 있었다. 너무 큰 차이로 이겼을 경우는 예외였다.

"네가 한번 더 하자해서 내 돈 다 잃었으니(다 잃은 건 아닌데도 화투판에서는 늘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딱 한번 더하자." 이러니 끝이 날 리가 만무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두 사람이 동시에 선포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암튼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가 되어 이부자리로 들어간 우리는 곧바로 잘 수도 없었다.

잃은 자는 이긴 자가 눕자마자 상대의 배를 발가락으로 간지럽히며 항상 이 말을 남겼다.

"잠이 오냐? 내가 이렇게 잃었는데 잠이 오냐고?"

간혹 이 발가락 공격을 이겨내지 못해 했을 경우 우리는 다시 일어나 한번을 더하기도 했다.


화투를 치다가 화투를 손에 쥐고 잠이 드는 경험을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다.

창피하지만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한 몸 불사른 다음날 아침.

자매 판다 두 마리가 마주 보고 앉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다.



우리 이제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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