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라는 선물 7
그때는 몰랐다. 나보다 이른 언니의 등교가 우리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으리라고는.
자매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옷. 전. 쟁.
우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잠이 들 무렵 언니가 누운 채로 한 바퀴를 굴러 내 이부자리로 들어왔다.
"나 내일 네 옷 한 번만 입고 가면 안 될까?"
"무슨 옷?"
언니는 음~하며 옷 색깔과 디자인을 설명했고 나는 다음날 그 옷을 입을 생각이 없었기에 흔쾌히 승낙했다.
애초에 선을 그어놨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 건 우리 자매의 치열한 눈치싸움이 시작되고 나서였다.
언니는 그로부터 며칠 후 또다시 내게 같은 요청을 했다.
나는 언니가 옷도 나보다 훨씬 많은 데다 다양한 스타일의 옷들이 골고루 있어 내 옷을 왜 빌려 입으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역시 티셔츠와 청바지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굳이 언니가 나의 옷을 빌려 입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니, 언니는 나보다 예쁘고 멋진 옷이 훨씬 많은데 왜 내 옷을 빌려 입으려고 해?"
나의 질문에 언니는, 가끔 내 옷을 입고 가면 편하기도 하고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해서 기분전환용으로 입기에 좋다고 말했다.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이번에도 허락했다.
주말이 되어 언니와 함께 모처럼 이대 앞 쇼핑을 했었다.
언니는 언니가 추구하는 스타일의 옷을 샀고 나는 두어 벌의 티셔츠와 청바지를 샀다.
그리고 다음날 각자 새로 구입한 옷을 입고 학교를 다녀왔다.
그날 밤 우리는 옷 잘 산 것 같다, 편하더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우리가 옷발이 잘 받잖아 하며 자기만족과 잘난 체를 번갈아가며 하다가 서로를 바라보고는 그 모습이 또 웃겨서 깔깔거리고,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수다를 떨었다.
슬슬 잠이 들려고 할 무렵 언니는 전날 구입한 나의 옷을 자신이 내일 입고 가도 되겠냐고 조심스레 물었고, 나는 새 옷이니 아직은 그럴 수 없다고 얘기했다.
아침에 눈을 떠 학교에 갈 준비를 하기 위해 욕실로 들어서려는데 언니가 화장실에서 후다닥 튀어나왔다.
"갔다 올게."라는 인사말과 함께 1~2초 만에 언니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응, 언니 일찍 와!" 하는 나의 인사는 쏜살같이 빠져나간 언니의 귀에 도달하지 못했으리라.
언니가 오늘 늦게 일어난 건가, 왜 저리 급하게 나가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욕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는 순간, 그제야 잠이 깬 걸까, 서서히 맑아지는 머릿속에 한 장면이 멈춰 선다.
아..... 내 새 옷.
먹튀가 아닌 입튀, 그렇다 언니가 내 옷을 입고 튀었다.
학교를 가서도, 수업을 들으면서도 곧장 집으로 들어가 언니와 한 판 붙을 생각만 했다.
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언니를 큰소리로 불렀다. 조용했다.
신발을 벗고 달려들어가 언니 책상에 붙어 있는 시간표를 확인한 후 시계를 보았다. 예상대로라면 언니는 버스를 타고 있을 것이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집에 도착할 것이다.
'들어오기만 해 봐, 가만 두지 않겠어.' 나는 여전히 분이 가라앉지 않은 상태였다.
저녁시간이 지났는데 언니는 아직이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니 내가 연락할 방법은 없었다.
언니가 집으로 전화를 하지 않는 한 연락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정한 규칙에 따르면 통금시간은 10시였으니 그 시간 안에는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던 걸까. 나는 어느새 이부자리 위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뭔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시 눈을 떴는데 언니가 작은 목소리로 "나야, 얼른 다시 자." 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잠결에 "응"하고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 보니 언니는 이미 등교를 한 상황이었다.
아, 이런. 또 기다려야 한다.
어제와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거실에 가부좌를 틀고 나는 또 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어! 일찍 왔네?" 하며 자연스레 욕실로 들어가 씻는다.
나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언니에게 따졌다.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는데 언니가 너무나 순순히, 그것도 정말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사과했다.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어 이게 아닌데.
나는 다시금 인상을 쓰며 싸움을 걸었는데 언니는 또 미안하다고 말하며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 다짐을 했다.
그때 믿지 말았어야 했다.
조용히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함께 밥을 먹는데 언니가 자연스레 옷 얘기를 꺼냈다. 지난번 새로 산 옷이 나랑 정말 잘 어울리더라며 잘 산 것 같다고 했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새 옷 중 나머지 한 벌만은 지켜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진 나는 옆으로 돌아누워 언니가 잠들었음을 확인했다.
조용히 일어나 발꿈치를 들고 옷장 앞으로 걸어갔다.
두 손으로 힘을 주어 소리 나지 않게 옷장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새로 구입한 옷을 옷걸이채로 살며시 빼냈다.
이걸 어디에 숨겨야 하나. 동상처럼 굳은 나의 몸이었지만 머리만큼은 급속회전을 하고 있었다.
'싱크대? 아니다. 언니가 아침에 먼저 일어나 무언가를 먹기 위해 그릇을 꺼낼 수도 있다.'
'신발장? 아니다. 어제와 다른 신발을 신고 가려고 신발장 문을 열었다가 나의 옷을 발견하면, 다시 들어와 갈아입고 갈 수도 있다.'
'책상서랍? 아. 이것도 위험해.'
'음........'
'아!'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그래, 이거다!'
나는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을 그대로 들고는 다시 나의 이부자리로 돌아왔다.
등으로 언니를 가린 채 손다리미로 주름을 최대한 펼쳐가며 나의 옷을 방바닥에 고이 모셨다.
그리고는 이부자리로 그 위를 덮고 다시 그 위에 내가 누웠다.
나는 '완벽했어.' 하며 쾌재를 불렀고, 이불속으로 들어간 나의 양손은 정성스럽게 이부자리를 토닥거리고 있었다.
'나의 옷이여 너도 잘 자렴.'
그렇게 나는 나의 옷을 사수했다.
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떠 옆자리를 보니 언니는 이미 일어난 듯했다.
욕실 물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이미 집을 나선 것 같았다. 인사도 없이.
나는 흐뭇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일어나 살포시 이부자리를 들어 올렸다.
옷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