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며칠간은 시차 적응도 할 겸 언니가 살고 있는 뉴저지 포트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명소 위주로 관광 겸 쇼핑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꿈꿔왔던 나이아가라 폭포관람이 눈앞에 다가왔다.
언니와 형부, 돌을 기다리고 있는 조카와 우리 부부, 이렇게 5명이 그날 아침 형부 차에 올랐다.
1박 예정이었던 우리는 한껏 멋부릴 옷을 차려입었고, 커다란 가방에는 다음 날 갈아입을 더 멋부릴 옷과 그에 따르는 부속품들을 챙겼다.
조카의 짐도 만만치 않았다. 기저귀에 액상분유, 그 외의 유아용품들도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차 트렁크에 모든 짐을 싣고 우리는 설레고 신나는 마음으로 출발을 외쳤다.
각자의 가정을 꾸리느라 헤어져야만 했던 우리 자매가 타국에서 이렇게 다시 만나 함께 여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했다.
차를 타고 가면서 형부는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숙소는 보통 수준의 호텔을 갈 건데 그 근처는 호텔이 천지라 굳이 예약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도착해서 좋아 보이는 곳으로 골라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그 대신 저녁은 랍스터로 유명한 집을 알고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만찬을 즐기자 했다.
그날 남편과 나는 당시(30년 전) 우리나라에서는 비싸서 못 먹는 랍스터를 그렇게 언니 덕에 처음으로 먹어보게되었다. 훌륭한 저녁식사였고 멋진 시간이었다.
우리에겐 느린 속도로 천천히 가면서 마음에 드는 숙소를 고르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알지 못했다
미국 독립기념일의 위력을..
어두움이 밀려오고 있었다.
어둠 속에 호텔 네온사인이 유난히 빛났다.
이리저리 눈을 돌려 호텔 외관을 확인했다.
몇 개의 호텔을 흘려보내고 괜찮아 보이는 어느 호텔 앞에 차를 세웠다.
형부는 내부시설이 괜찮은지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겠다며 우리에게 잠시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다.
잠시 후 헐레벌떡 달려온 형부의 낯빛에 우리 모두는 예사롭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인지했다.
이미 예약이 꽉 차서 남아있는 방은 없으며 다음날이 독립기념일이라 아마도 숙소 찾기는 힘들 거라는 호텔 지배인의 말을 전하며 형부는 다급히 운전석에 올라탔다.
독립기념일.. 이 정도일 줄 미처 몰랐다.
언니는 형부에게 미리 예약해두지 않았다고 잔소리 폭격을 하고 있었고 형부는 이 근처 호텔이 많아 쉽게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며 언니 눈치를 보며 당황해하고 있었다. 불안이 엄습했지만 그래도 설마 하며 우리 부부는 호텔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손가락을 뻗어 여기요, 저기요를 외쳐댔다.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숙소 찾기에 실패한 우리는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좁은 차 속에서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사실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결론이 나자 우리는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외관이 괜찮아 보이면서 주변에 주차가능한, 동시에 로비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최적의 호텔을 찾기로 한 것이다.
몇 바퀴를 돌고 난 후 그렇게 그날밤 우리의 숙소가 정해졌다.
위의 조건을 모두 갖춘 바로 그 호텔,
그 호텔 옆 길 한편에 주차된 형부의 차.
불편했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그렇게 하룻밤을 보냈다.
노숙 같은 느낌의 차박이었다.
누가 먼저 잠든 건지 알지 못한 채 잠이 든 것처럼, 누가 먼저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몇 초사이에 모두가 눈을 떴다.
첩보작전이 시작되었다.
먼저 형부와 남편이 밖으로 나갔다.
불룩해진 힙색(hip sack)을 메고서.
잠시 후 두 사람이 돌아왔고 상황을 보고 받은 뒤 언니와 내가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는 힙색으론 부족했다. 가벼운 백팩에 칫솔, 치약, 수건(남자들은 수건도 생략했던 것 같다.)과 기초 화장품 몇 개를 챙겼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호텔로비를 둘러보는 척하다가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언니가 세수하는 동안 내가 먼저 망을 봤다. 그리고 공수전환.(공격은 세수, 수비는 망보기다)
일찍 일어나길 잘한 것 같았다. 단 한 사람도 우리가 씻는 동안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자매는 간단한 화장까지 끝내고 손가락 빗으로 머리를 정돈한 후 최대한 자연스럽게 로비를 나와 차를 향해 달렸다. 아무도 쫓아오지 않았지만 쫓기는 듯 우리는 역주했다.
그렇게 각자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우리들은, 스릴감 넘쳤던 작은 모험에 서로를 바라보며 박장다소했다.
웃음소리가 너무 커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쉿 하는 흉내를 내면서도 우리의 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