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세계일보
두어 달 전 우리 동네 사거리의 모습이 바뀌었다.
대각선 횡단보도와 더불어 신호등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변화라기보다는 기능 하나가 추가되었다는 게 맞을 듯하다.
예전에는 초록불 아래에 숫자가 표시되어 보행가능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려주었는데, 대각선 횡단보도가 등장하면서부터 빨간 신호등에서도 같은 기능이 추가되어 앞으로 몇 초를 기다리면 초록불로 바뀌게 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적색등 잔여시간 표시장치라고 한단다.
동네의 대각선 사거리에서 한 정류장을 지나면 그곳에도 신호등이 있는데 이곳은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지 않은 예전 그대로의 신호등이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왕복 4차로 이상의 도로중 보행자의 통행이 잦고,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횡단보도에 주로 설치하는데, 앞으로 이 장치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나갈 예정이라 한다.
물론 새로운 기능이 더 불편하다는 반대의견도 있지만 나의 경우 여러모로 편리해졌다는 것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보행자의 신호위반인 무단 횡단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의견은 나뉜다.
숫자가 표시되니 남은 시간을 미리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어 초록불로 바뀌기 2초 혹은 1초가 남은 경우, 미리 뛰어나가는 상황이 발생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한마디로 미리 알아서 병이 된 경우다.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잔여표시기능이 없었을 때에도 주변의 다른 신호등을 보고는 미리 뛰어나가던 사람들이었으리라 추측된다.)
반대로 숫자가 정확히 표시되니 오히려 그 숫자를 보고 정확히 지키기만 한다면 무단횡단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사고의 위험 또한 줄어든다는 견해인데 나의 생각도 그러하다.
또한 대각선 횡단보도는 모든 운전자가 동시에 멈춰 선다는 점에서 보행자를 더욱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암튼 보행자나 운전자 모두, 지키라는 것을 정확히 지키기만 한다면 모든 심각한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
산책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로 그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나는 적색 신호등의 줄어드는 숫자를 바라보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이 같은 신호등 하나가 존재한다면...
멈춰야 할 순간과 나아갈 순간을 정확히 알려주는,
얼마동안 멈춰 있어야 하는지 얼마동안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모든 시간까지 숫자로 미리 알려주는,
착하고도 고마운 신호등 하나가 우리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면...
매 순간 그의 도움은 우리의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들어나가겠지.
하지만 일생의 어느 한순간, 이 신호등을 사용할 단 한 번의 찬스가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어느 순간에 이 버튼을 누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