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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Nov 22. 2023

귀 기울여 주세요

병들어 가는 청춘

사진: Unsplash의 Nick Fewings



20년 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두 아이 모두 이곳에서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 대학 졸업 후 첫 째는 중견기업에 취직하여 회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으며, 둘째는 직업 군인이 되어 군에서 제공하는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각자도생 하며 살아가는 우리 가족은 매주 주말에 모여 함께 밥을 먹고 TV도 보면서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각자의 약속이 있을 때는 예외지만.


아이들이 오면 우리는 이것저것 물어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노력한다. 힘든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가 쌓인 경우라면, 해결까지는 못해주더라도 내뱉음에서 오는 시원함을 통해 마음속 응어리를 최대한 작은 알갱이로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첫째인 딸아이가 요즘 무척이나 힘들게 지내고 있다.

새로 온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로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같이 일해 온 직장동료 몇몇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 한다.


주말, 새벽을 막론하고 울려대는 카톡은 기본이고, 회의에서 결정 난 일을 자신만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가 퇴근 후 다시 회의내용을 보고하라고 하는가 하면, 퇴근시간이 다되어갈 무렵  업무지시 내리고 자신은 약속 있다며 칼퇴근한다.

거의 모든 회사 일을 자신의 지인들과 연결시켜 진행을 하며

내부 사정 아랑곳 하지 않고 지인들이 요구한 바를 최대한 맞춰주라고 지시하며 지인들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능력인양  

잘난 척을 하고 살아간다.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배려라고는 1도 없는, 자신만의 자아성취를 주장하며 분별없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 이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웠다.


한두 달 전 어느 토요일, 그날도 가족 모두가 모여 저녁식사를 끝낸 후 술 한잔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토요일 밤을 살짝 넘겨 일요일을 맞이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순간 딸아이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카톡 알림이 뜬 것이다.

주말, 새벽 관계없이 카톡이 온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목격을 하니 놀라움이 더 컸던 것 같다.


금요일에 이미 마무리가 된 일을 토요일 한밤중에 생각해 보니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그녀가 새벽에 연락을 한 것이다. 그리고는 일요일 오전까지 업체에서 자료를 받아내어 자신이 요구한 대로 일이 진행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그 일은 중차대한 일도 아니었고 그냥 진행되어도 상관없는 일인데  칭송받으려는 상사의 욕심이 묻어나는 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새벽시간에 거래처에 연락을 하라니 어이가 없었다.

딸아이 선에서 마무리되는 일이라면 화는 나겠지만 짜증한 번 내고 잠 좀 덜자면서 해버리면 될 일일지도 모르겠으나, 주말 새벽 거래처에 연락을 취하라 하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딸아이가 화가 난 핵심은 여기에 있었다.

자신도 그녀와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

예의와 배려라고는 없는 그 같은 행동을 상사의 만족도를 올려주기 위해 아니 상사의 자기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 주말 새벽 똑같은 만행을 저질러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것이다. 


지금까지 성장하는 가운데 곁에서 지켜봐 온 엄마인 나로서는 우리 딸이 왜 화가 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여태껏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는데 타인에 의해 배려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게 나 역시 참기 힘든 일이었다.

딸아이는 잠 한숨 못 자며 자신의 선에서 마무리 지을 방법이 는지 고민을 한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어찌 되었냐고, 새벽에 연락했냐고 물어보았더니, 피곤에 짓눌린 두 눈을 껌뻑이며 연락은 하지 않았고 일은 해결되었다고 다.

결국 딸아이는 연락 한 번으로 받아낼 수 있는 자료를

자신이 역추적하여 일일이 찾아내는 방법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고 했다.

일머리가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딸아이는 자신의 시간을 털어 상대방의 주말을  지켜주었다.


그녀의 자아성취를 위한 팀원들의 희생은 이후로도 계속 진행 중이다.

회사 안에서도 원성이 자자하고 블라인드에 수많은 댓글이 올라와 있다는데 타격 1도 없는 그녀란다.

그 와중에 우리 딸은 신입과 1년 차 직원들을 걱정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젊은 청년들이 정신과를 드나들고 밥을 먹다가도 눈물을 흘리다는 것이었다. 물론 딸아이도 우리와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쏟아낸 적이 있었다. 정말 잘 울지 않는 아이인데 말이다.


딸아이가 동료얘기도 자주 들어주고 지금까지 힘이 되어주려고 노력해 왔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는 것이 없기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 역시 그 아이들과 우리 딸의 모습이  안쓰러워 가슴이 저려왔다. 청춘이 병들어가고 있는 현실이 너무나도 마음 아팠다.


그런데 걱정되고 마음이 아픈 그 자리에서 문득 감사의 마음이 올라온다. 딸아이는 그들과 아픔을 함께 하고 있으며 우리 부부는 딸아이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마음 한구석 자리 잡고 있는 힘듦을 우리에게 쏟아내고 있는 딸아이가 고맙게 느껴졌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딸아이의 마음을 열어주신 주님께도 감사하는 순간이었다.(가톨릭 신자입니다)


공감하는 가운데 어느새 같은 편이 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뜬금없는 포인트에서 우리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마음활짝 열어 얘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고,

그 누군가가 나의 말에 공감하며 귀 기울여 준다면,

바로 그는 내 삶의 소중한 친구이리라.


이 자리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우리 모두는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이며 인생의 선배이자 후배이고, 삶의 지혜를 깨닫게 해 주는 스승과 제자가 아닐는지.

희로애락을 쏟아낼 수 있는 이 공간과 지금의 시간이 내게 주어지고 있음에 감사하는, 그리고 행복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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