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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Dec 13. 2023

나는 태교에 실패한 걸까, 성공한 걸까?

사진: Unsplash의 Suhyeon Choi



20년도 더 지난 나의 태교 실패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옮기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일주일 전 https://brunch.co.kr/@dolkongempathy/37  <새치기하면 안 돼요!>라는 글을 써 내려가다가 문득 옛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와 글로 남겨 보기로 했다.




둘째 녀석의 이야기다.

우리 아들은 어린 시절 소리에 대한 공포증이 있었다.

이는 우리 부부의 잘못에 기인한 결과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둘째 아이를 임신한 지 7개월이 지날 무렵, 남편은 내게 영화관에 간 지 너무 오래되었다며 좋은 영화 한 편보고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저녁도 먹고 오자는 제안을 했다.

첫째 아이를 낳고 6년이 지나 둘째를 임신하기 전까지 내가 본 영화라고는, 첫째와 단둘이 혹은 첫째 아이의 친구들과 엄마들이 어우러져 보러 간 어린이용 영화가 전부였었다.

그랬기에 남편의 제안에 솔깃했고 또 남편과 둘만의 영화관람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설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첫째 아이를 친구집에 맡기고 무거운 몸이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관에 도착했다.




<공동경비구역 JSA>

당시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만큼 인기와 작품성에서 인정을 받은 영화였다.

그랬다.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만으로 우리는 그렇게 스크린 앞에 앉았다.

그런데 아...

임신부가 보기에는 무리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엄청나게 큰 소리로 연이어 울려 퍼지던 총소리. 그 소리는 나의 고막을 타고 들어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소리의 크기에 나는 경악했고 어느새 나의 두 손은 배를 감싸 안고 있었다.

나의 필사적인 보호 본능에도 불구하고 뱃속의 아이는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에 더욱 놀란 나는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에 푹 빠져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흔들렸고, 다소 잠잠해진 영화의 흐름에 나 스스로도 이젠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차마 일어서지 못하고 계속 자리를 지켰다. 다행히 이후로는 소리로 인해 더 놀랄만한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아이에게 해가 되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근심으로 결코 편하지만은 않은 마음이었지만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더 해로우리라 생각하며 마음을 잡았다.

출산 후 모든 기관이 정상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이후 소아과의 정기 검진에서도 늘 긍정적인 결과를 대할 수 있었기에 나는 그 순간을 한동안 잊고 살았으며 아이도 무탈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5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거실에서 둘째 아이와 함께 장난감 놀이를 하던 중 컴퓨터 작업할 게 생각이 난 나는, "엄마 컴퓨터 일 좀 하고 올게." 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순간 아이가 "잠깐만요!" 하더니 벌떡 일어나 방으로 뛰어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는 그저 방에서 혼자 놀려나 보다 생각했었다.

몇 분이 지난 후 아이가 내 곁으로 왔다. 장난감 놀이를 계속하면서 컴퓨터 화면을 한 번씩 바라보고는 신기한냥 무언가를 물어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줄곧 내 옆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일을 마무리하고 컴퓨터를 끄려는 순간 또다시 "잠깐만요!"를 외치더니 후다닥 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 행동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거듭되는 아이의 행동에 불안한 기운을 감지했던 나는, 그날도 컴퓨터를 켠다는 소리에 이미 달려 들어간 아이의 방문을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꼼짝 않고 있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살포시 끌어안으며 이불을 벗겼더니 그 속에서 아이는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아.....

놀람과 동시에 나의 입에서 한숨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예전의 그 불안이 그렇게 또다시 나를 찾아왔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Windows 부팅과 종료 시에는 '우왕' 하는 큰 소리의 울림이 퍼져 나왔었다. 마치 영화관에서 시작을 알리는 효과음과 비슷한 소리였는데 그것은 아주 작은 소리에서 큰 소리로 퍼져나가는 조금은 위압적인 소리였다.

우리 아이는 그 소리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그때, 그동안 잊고 있었던 영화 속 총소리가 내 귓전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총소리는 곧바로 내 심장을 가격했다.

그러고 보니 온 가족이 함께 노래방을 갔을 때에도 둘째 녀석은 눈을 질끈 감고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나는 그저 엄마, 아빠 그리고 누나의 노랫소리가 듣기 싫어서 하는 장난스러운 몸짓인 줄로만 생각했었다.


정성스러운 태교로도 모자랄 판에 나는 엄마로서 너무나 큰 실수를 했다.

나의 경솔함으로 이러한 상황을 맞이했음에 대한 후회와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후회와 원망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방해로 작용할 뿐이다.

나는 결심했다. 아이와 함께 이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로.

맘 속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아이를 불러 놀이를 제안했다. "엄마가 어떤 소리를 낼 건데 그 소리를 들으면 방에서 나와 손을 들고 들려요라고 외치면 이기는 거야." 그리고 놀이를 할 때마다 규칙이 조금씩 달라질 거라는 얘기도 해 주었다.


1단계.

출발점은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둘째 아이의 방이었다.

아이에게 "오늘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시작하는 거야."라고 얘기해 주고 방을 나왔다.

"이제 시작한다!" 하고 외치니. "네~"라고 큰소리로 대답을 한다. 

나는 컴퓨터 방으로 뛰어가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방으로 들어가 아이에게 물었더니 아쉬운 표정으로 "아무 소리도 못 들었어요." 한다.

"그럼 이번에는 이불을 덮지 않고 한번 해볼까?" 아이는 좋다고 했다.

그렇게 이불을 덮지 않고 문을 닫은 상태에서 아이가 종료음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 2차 시도를 했다.

이번에는 아주 아주 작지만 소리를 들었다며 아이는 이겼다는 기쁨에 신나 했었다.

우리는 첫날의 성공적인 결과에 만족하고 서로 간지럼을 태우며 침대를 뒹굴었다.


2단계.

방문을 열고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방 문을 연다는 사실 자체가 아이에게는 두려움이었던 것 같았다.

방 문에서 멀리 떨어진 침대 뒤에 몸을 숨기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이를 뒤로한 채 버튼을 눌렀고 컴퓨터에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아이는 '들려요'라는 말 대신 다급한 목소리로 "엄마!" 하며 나를 찾았다. 나는 아이의 방으로 달려가 아이를 힘껏 감싸 안았다.

결과는 실패였고 이후의 훈련은 더욱 힘들어졌다. 소리의 실체를 아이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솔직한 대화를 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는 내 맘과는 달리 고개를 내저었다.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했었다. 큰 소리에 대한 공포증이 있는 아이에게 그것을 참고 이겨내 보자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아이의 거부를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며칠간의 쉼을 가지며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서서히 아이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대놓고 컴퓨터 소리와의 대결이다. 

너무나도 잘 응해준 아이 덕분에 우리는 재도전에서 기분 좋은 결과를 얻어냈다.

그렇게 우리는 컴퓨터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며 훈련을 해 나갔다.


3단계.

마지막 과제였던 직접 컴퓨터 켜기를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수십 번의 반복 끝에 겨우 성공할 수 있었는데 이는 수많은 위기를 견뎌낸 결과였다.

처음에는 아이의 두려워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이는 한쪽 팔을 쭉 뻗어 손가락 하나를 버튼 위에 닿을락 말락 올려놓았다. 눈을 감은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얼굴은 곧장 달려 나갈 방문을 향하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쳤는지 잠깐의 머뭇거림 후,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엄청난 속도로 내 눈앞을 지나갔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어느 날 컴퓨터 방으로 발길을 향하는 나를 보더니 자신이 켜주겠노라며 나를 앞질러 걸어갔다.

잠시 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방에서 나온 아이가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씩 웃는다.

그날의 감격이란.....




이후 아이의 큰 소리에 대한 공포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힘든 도전에 동참해 준 아이 덕분에 내 마음속 무거움도 깨끗이 사라졌다. 


꼬마 아이가 어른이 되어 이제 그날의 기억마저 희미해질 무렵 우리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지금은 직업 군인으로 생활하고 있는 둘째가 후보생 훈련과정을 마칠 무렵 전체 후보생 중 사격 2위라는 쾌거를 이뤄낸 것이다. 


삶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나는 태교에 실패한 것일까 아니면 성공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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