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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Oct 31. 2023

제자리 복귀 중

사진: Unsplash의 Janke Laskowski



언니네 가족과 함께한 20일이 어느새 훌쩍 지나갔다.


새벽 5시 50분.

집 앞에 도착한 공항택시를 곁에 두고 내년에 또 보자며 격하게 끌어안은 우리는, 각자의 시선에서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이른 새벽 눈을 떠서인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일정에 체력이 바닥난 것인지, 현관문을 들어선 나는 피곤함에 짓눌려 침대 속으로 곧장 기어 들어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오전 10시가 훌쩍 넘어버린 시간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방 저 방을 기웃거려 보았다.


시끌벅적하게 이 공간을 채웠던 우리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언니네 가족세면도구와 화장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던 욕실 선반도, 방 한편 줄지어 뉘어져 있던 뚜껑 열린 캐리어들도 모두 사라졌다.

각양각색의 옷으로 채워져 있던 행거에는 나무 옷걸이만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을 뿐이다.


늘 그렇듯 나는 이 시간이 두렵다.

수없이 겪었던 마음이지만 여전히 힘든 순간이다.


회피..


티브이 리모컨을 찾아 조용히 눌러본다.

발라드 음악을 들어서도 안되고, 애잔한 음악이 배경으로 깔린 드라마도, 사연이 있어 심금을 울릴 프로그램도 모두 패스다.

가장 편안하게, 행복하게 지내고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지만 언제나 후회와 아쉬움은 남기 마련인가 보다.

나는 그 감정들을 견뎌내기가 힘이 든다.

시간이 명약임을 잘 알고 있지만 효과를 보기까지의 그 시간이 참으로 아프다.


TV 편성표를 눌렀다. 빠른 손동작으로 채널버튼을 열심히 눌러본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2

그래 이거다!

경쾌하다 못해 날아갈 것만 같은 템포와 리듬에 흠뻑 취해 두둠칫 몸도 좌우로 흔들어보자.

숨 막히는 배틀에 나의 한 표도 던져보고 예상할 수 없는 결과에 긴장도 해보자.

가라앉아 있는 나의 마음을 분명 up 시켜주리라.


그런데 이게 뭔가..


하필이면 내가 보게 된 회차가 탈락배틀 방송분이었다. 6팀 중 2팀이 탈락의 아픔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열정적이었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그들의 지난 모습이 스크린을 통해 아련하게 지나갔다.

뒤이어 눈물범벅이 되어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떠나는  모습과, 그들을 떠나보내며 역시나 눈물짓는 남겨진 이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 대한 나의 '공감'은,

공허함과 애틋함을 끌어안고 있던 내 마음에 도화선이 되어 마침내 나의 감정을 폭발시켜 버렸다.

화면 속 사람들이 울고 있고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나 또한 울고 있었다.

가슴이 아려왔다.

누군가는 떠나가고 누군가는 떠나보내는,

마주하기 싫어 피하고만 싶었던 나의 감정은 그렇게 한순간에 저격당했다.

눈물과 함께 나의 감정들이 쏟아져 나와 잘게 부서졌다.


지금 나는 서서히 회복 중이다.




글을 안 쓴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오랜 시간 백지상태여서인지 무얼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용기를 내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괜히 볼펜을 잡고 똑딱거려 보고 티슈 한 장을 뽑아 눈에 띄지도 않는 먼지를 닦아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지금 나의 손이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나는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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