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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Nov 21. 2018

혹시 페미니즘... 그런 거 하세요?

네, 그런 거 합니다.

  어떤 집단보다 길고 오랜 차별을 받아온 소수자 집단이 있다. 그 개체의 수는 분명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누구나 만나보았으며, 존재를 인지하고 있고, 커밍아웃을 할 필요조차 없는 정체성임에도 유구한 차별의 역사를 가진 집단. 여성.


  나는 여성이다. 시스젠더(※신체적 성과 정신적인 성이 일치하는 사람) 여성이다.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고, 성지향성과 달리 정체화의 과정조차 필요하지 않았으며, 사회적인 차별과는 별개로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나름 만족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지구 상의 모든 곳에 성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성평등을 위해 여성의 인권이 신장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사람으로 대접받는 사회가 올 때까지 목소리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매번 다짐하는 나는, 페미니스트다.


  어쩌다가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을까? 나는 중학생 때만 해도 개념녀가 좋은 건 줄 알았고, 소개팅이나 데이트에서 더치페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는 나라에 2년을 빼앗기는 불쌍한 남성들을 위해 군가산점 제도가 존재해야 된다고 주장했고, 결혼할 때 남자는 집을 여자는 혼수를 해오는 전통이 무척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메갈리아'라는 사이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수십, 수백 개의 질문이 쏟아졌다. 왜 성범죄 피해자의 절대적 다수가 여성이어야 하는가? 왜 강력범죄 가해자의 다수는 남성일까? 왜 여성은 강간당하고도 그 피해를 입증하지 못하면 꽃뱀 취급을 받아야 할까? 왜 낙태한 여자들에게는 죄를 물으면서 임신시킨 남자들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을까? 여성은 왜 갑갑한 브래지어를 차야되며 여성의 가슴은 성적으로 노골적인 신체 부위가 되어야 할까? 왜 여성의 성욕과 자위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을까? 왜 성관계를 많이 맺은 여성은 걸레가 되고 남성은 권력자가 될까? 왜 여성만 화장을 하는 걸까? 왜 여성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2로 시작하고, 여학생들의 출석번호는 50번부터 시작할까? 왜 나는 이런 것들에 의문을 품지 않았던 걸까?


  뭔가 이상했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사회는 여성에게 지나칠 정도로 불합리했고 사회는 남성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인터넷 속에서 메갈은 이미 욕이 되어 가고 있었지만 그 메갈이 경찰이 소라넷을 수사하게 만들었고 내 안에, 그리고 수많은 여성들의 안에 단어 하나를 심어주었다. 페미니즘.


  입문 서적을 검색해서 책을 읽었다. 책의 한 장을 읽을 때마다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다. 하나하나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말들 뿐이었다. 왜 이 사회가 기울어진 운동장인지, 내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불평등과 차별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는지 머리가 띵하게 울렸다.


  여성 차별의 역사가 긴 만큼 페미니즘의 역사도 길다. 여자가, 김치년이, 된장녀가, 꼴페미가, 김여사가, 메갈년이 되기까지 페미니즘은 계속해서 존재했다. 수없이 많은 여성혐오가 같은 구조로 반복되는 동안 페미니즘도 그 목소리를 다시, 다시, 또 다시 냈다. 내가 여성학에 발을 들일 때까지 타오르기를 멈추지 않았던 여성들 덕분에, 나도 또 다른 여성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종종 누군가가 묻는다. 혹시, 페미니즘 뭐 그런 거 하느냐고. 그럼 나는 웃는다. 그리고 대답한다.


  Yes, I am a Femin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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