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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Dec 17. 2018

한남충 재기해가 페미니즘이라고?

당신이 아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어요

  신문이나 뉴스를 보다보면, 양성 간의 갈등이 극심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치 "한남충"과 "김치녀"가 동일한 무게의 혐오 단어인 양 이야기하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점잖은 척 고개를 끄덕인다.


  단언컨대, 한남충과 김치녀는 같은 무게가 될 수 없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한남충이란 단어는 발언한 사람을 옥죄지만 김치녀는 들은 사람을 옥죄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애인에게 고가의 선물을 받으면 김치녀가 되어야 했고, 내 돈으로 고가의 물건(그게 고작해야 스타벅스 커피였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을 사면 된장녀가 되어야 했다. 그 두 이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끝없이 검열하고 '개념녀'로 거듭나고 싶어했다. 반면 한남충은 어떤가? 명백히 성차별적인 언행을 일삼는 사람에게 한남충이라고 불러도, 그 말을 들은 남성은 굳이 개념남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는다. 그 말을 던진 사람은 '메갈년' '꼴페미'로 낙인 찍힐 뿐이다.


  김치녀, 된장녀와 같은 단어는 당시 뉴스나 예능에도 심심치않게 등장할 만큼 널리 쓰였던 단어다. 예능에서는 여성 연예인에게 농담으로 사용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당신은 한남충이란 단어를 예능에서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연예인이 그 단어를 썼다가는 삽시간에 논란이 되고 매장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여자 아이돌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베스트 셀러 소설 한 권 읽었다고 포토카드가 잘리고 불태워지는 대한민국에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남충과 김치녀는 절대 같은 무게의 단어가 될 수 없다.


  누군가는 우리나라의 페미니즘은 너무 과격하다고 말한다. 혐오를 혐오로 받아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한남충 재기해를 외치는 너희는 그냥 혐오 집단이 될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습게도, 한남충 재기해를 외치는 그 누구도 아직까지 남성을 살해한 적 없으며, 여성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강간 및 살해의 피해자로 죽어가고 있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내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을 뿐인 내가, 인터넷에서 한남충 재기해를 외친다고 해서 그게 남성들에게 실질적인 생존 위협이 될 리가 없다. 이게 바로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젠더 권력'이다.


  여성이 그 어떤 소수자보다 유구한 차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만큼, 페미니즘 역시 굉장히 오랫동안 이어져온 사상이자 학문이다. 한남충 재기해 같은 단어는 한국에서 나온지 고작 몇 년조차 되지 않은 단어인데, 이 단어들로 페미니즘을 여성 우월 주의 사상이라도 부른다면 당신은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다는 뜻이다.


  이 글을 읽은 후에도 한남충은 그저 혐오 단어이며, 그 이유가 듣는 당신의 기분을 나쁘게 하기 때문이라면, 축하드린다. 당신은 '운 좋게' 남성으로 태어나서, 남성이기에 얻은 권력들을 그저 당신의 힘으로 얻어낸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여성들이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외치는 절박한 소리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이 남성과 같은 위치에 서려고 할 때마다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며,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을 빼앗긴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게 안전한 곳에서 젠더 권력을 손에 쥐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하는 동안 고작 '한남충 재기해'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어찌됐든 혐오는 나쁘다고 말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목소리를 내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갖고 있었던 권력을 여성들 역시 결국은 손에 넣을 것이고,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인정받는 날은 기어코 오고야 말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여성들이 그 일을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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