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하루 Feb 03. 2019

나의 사랑하는 솜솜.

복막염, 심장이 떨어지는 단어에 관하여

  나의 사랑하는 솜솜.


  어떤 말부터 꺼내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너는 읽지 못할, 너에게 쓰는 편지를 이곳에 기록하려고 해. 나의 사랑하는 아가, 사랑해 마지않는, 너무나도 소중한 나의 솜솜아.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너는 모르지. 설마, 설마 하면서도 아니겠지 하고 낙천적으로 굴던 내가 그 말을 마주하던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사실 나도 기억이 잘 안 나. 복막염이 맞을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실감이 하나도 나지 않았던 것 같아. 내 눈으로 직접 초음파 검사를 지켜보고, 검게 일렁이는 게 다 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검사 때문에 닿은 차가운 젤에 놀라 네가 나를 두번이나 물던 그 상황에서도, 나는 그냥 이 시키, 나를 물다니! 하며 장난스럽게 굴기만 했어.


  너를 품에 안고 집에 돌아오는데, 너가 너무 작더라. 너무 작고, 너무 가벼워서, 태어난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네가, 조만간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어. 복막염은 100% 죽는다고 말씀하신 의사 선생님의 말이 계속 맴도는데도, 사실 잘 모르겠더라. 벌써 이 주째 밥을 먹지 않는 네게 주사기로 매일 강제급여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잘 모르겠어. 네가 당장 내일이라도 호흡 곤란이 올 수도 있다는 그 말을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


  너도 알지, 솜솜아. 우리 병원 갔다 왔던 날에 언니 되게 잘 잤잖아. 처음 먹는 약이 쓴지 고개를 돌리며 피하고, 침을 줄줄 흘려가며 약을 뱉고 싶어하는 너를 보고 나서도 나 되게 잘 잤잖아. 친구들이랑 약속도 즐겁게 갔다 오고, 네 소식을 전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근데 그 다음날 밤에는 왜 그렇게 울었을까. 눈물 콧물 다 빼내면서, 너를 끌어안고 왜 그렇게 울었을까. 솜솜아. 왜 그때 너는 웬일로 내가 끌어안은 품에서 빠져나갈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어? 물론 잠깐 놓자마자 훽 도망가기는 했지만, 왜 한참이나 언니 품에 가만히 있어줬어? 내 심장소리를 듣고 있었던 걸까, 얘는 왜 날 끌어안고 우는지 이상하게 생각했던 걸까. 잘 모르겠지만 그날부터 너를 한 번이라도 더 안고 싶어서 매일같이 널 괴롭히고 있네.


  미안해, 솜솜아. 우리 집에 온 지 3주째 되던 날에도 네가 크게 아팠었잖아. 나 그때도 네 하루 입원비가 너무 비싸서, 입원 시킬지 퇴원 시킬지 고민했었지. 네가 생명의 고비를 넘는데 매번 그 앞에서 돈 걱정이나 하고 있는 언니라서 정말 미안해. 이렇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도 그저 위선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미안해.


  복막염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치료법이 없다, 사망률이 100%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임상 실험이 성공한 사례가 있대.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두어 곳에서 신약 치료를 하고 있는데- 찾아보니 그 금액이 몇백만원이더라. 1주일에.

  솜솜아. 네가 그 돈보다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언니는 돈이 없어. 너무 웃긴 말이지. 돈이 없다면 널 데려오지 말았어야 했던 건데. 내 마음대로 널 데려와 놓고 돈이 없다니.


  열심히 찾아봤어. 그 약이 뭐고, 내가 따로 구할 수는 없는지, 그 약을 어떻게 투여해야 하는 건지. 그런데 솜솜아. 약 자체도 많이 비싸더라. 우리나라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서 해외에서 구매를 해야하는데, 배송 시간도 오래 걸릴 뿐더러 사흘치만 사도 10만원이 넘어가. 보통은 1달 넘게 치료를 하는 것 같은데, 나는 또 돈 앞에서 고민하다가 겨우 사흘치 약을 샀어. 네가 생각해도 웃기지. 사흘치를 사서, 치료해서, 네가 나아질까? 나아지는 것 같아 그제야 다시 추가로 구매하면 그 사이에 네가 위험해지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아직도 마음을 어지럽혀서, 조금 괴로워.


  솜솜아, 미안해. 용서를 구하고 싶어.

  내가 순간 너의 생명을 포기했던 걸, 용서해주겠니? 언니가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어? 나는 여전히 가난한 대학생이고, 고작해야 아르바이트가 수입원의 전부인데다가, 너를 위해 대출을 받을 수도 학업을 때려치고 돈을 벌 수도 없지만, 그래도 딱 하나 약속할게. 오늘부터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을게. 어제 네가 정말 오랜만에 내 손 위에 있는 사료를 오독오독 씹어먹는 걸 보면서, 인터넷에서 자신의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너무 많은 후회를 했어. 너는 아직 살아있기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내가 왜 먼저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했을까.


  솜솜아, 언니는 알아. 네가 예전에 지금보다 더 작고 어렸을 때, 음식을 토하고 초점없는 눈으로 늘어져 있던 순간을 버텨냈다는 걸 알아. 겉으로 보기엔 죽은 것만 같아 숨 쉬는지를 확인해야 했을 만큼 힘들었던 때를 버텨내서, 지금까지 내 곁에 머물러줬다는 걸 기억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번에도 너는 할 수 있어. 의학적인 지식같은 건 나는 모르니까, 나는 그냥 네가 아직 내 곁에 머물러주리라는 사실을 믿어.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 있지. 솜솜아.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그 생을 마감하지만 적어도 너의 끝은 아직 오지 않았어. 그 끝이 지금은 아니야. 나는 너를 믿을게, 너도 나를 믿어주렴.


사랑하는 솜솜.


  나의 사랑하는 솜솜. 앞으로도 많이 사랑할게.

매거진의 이전글 고양이에게 '손!'하고 말하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