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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Mar 14. 2019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그동안 사람이기는 했나

  최근 아이돌 승리(본명 이승현)가 운영하던 클럽 '버닝썬'에서 여성을 약물강간해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을 시작으로, 연예계에 줄줄이 폭탄이 터지고 있다. SBS에서는 승리와 친분이 두터운 가수 정준영이 불법촬영한 피해자가 최소 10명이 넘는다는 소식을 전했고, 그 단톡방에 또 누가 있었는가에 대해 시시각각 관심이 뒤따르고 있다.


  사실상 그 단톡방에 어떤 연예인이 있다한들 더 놀라울 것은 없으나 그 카톡방에서 오간 대화들이 올라올 때마다, 그들에게 내가 과연 사람이긴 했는가에 대한 허무함이 밀려오고는 한다. 그들에게 여성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여성'이었을 것이다.


  '소년'의 년은 年자를 쓰지만 '소녀'의 녀는 女를 쓴다. 청년과 처녀도 마찬가지다. 놈(者)은 성별을 포괄하지만 년은 여성만을 지칭한다. 한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man은 인류를 칭하지만 woman은 여성만을 말한다. 직업 등을 지칭할 때 기본으로 따라붙는 말은 -man이다. 여성을 가리키는 단어인 female  또한 남성을 일컫는 male에서 파생되었다.


  무슨 뜻이냐하면, 현대 사회는 철저하게도 사람의 기본값으로 '남성'을 지칭한다는 뜻이다. 남성의 주민번호 뒷자리를 1로 표기하고 여성의 것을 2로 표기하는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무렵에만 해도 여학생들의 출석번호가 51번부터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 성별이 '기본'이 된다는 건 결국 그 이외의 성별이 타자화된다는 걸 뜻한다. 여성은 늘 타자가 되었고, 대상이 되었으며, 주체로서의 존엄성을 무시당했다. 그 차이는 '아이돌'을 들여다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ㄴ (좌) 송민호 - 아낙네 MV / (우) 화사 - MAMA무대

송민호의 '아낙네'와 화사의 '주지마'는 둘 다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을 가사로 표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송민호는 뮤직비디오에서 다수의 여성을 거느리는 '왕'처럼 묘사되는 것에 비해 화사는 몸매를 부각시키는 '대상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옷을 무대의상으로 입고 있다.


  해당 가수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성적대상화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직업 중에 하나일 아이돌이 성별에 따라 요구받는 것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여성의 주체성은 남성이 원하는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프랑스 혁명에서 인권선언을 부르짖을 때 그 '사람(人)'에 여성은 없었다. 그로부터 230년이 흐른 대한민국도, 여전히 여성은 사람이 아니다. 연예인이 불법촬영 가해자로 지목되자 실시간 검색어 1위에 '000 동영상'이 올라오는 나라. 여성 아이돌은 불법 촬영물 유포가 두려워 전 남자친구(데이트 폭력 가해자)에게 무릎을 꿇는데, 남자 아이돌은 불법촬영물을 돌려보고 약물 강간이 자행되는 장소를 운영한다.


  그러니 우리는,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외쳐야만 한다. 나도 사람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명료한 그 문장을, 우리는 굳이굳이 목청 높여 외쳐야만 한다.


나도, 사람이라고.


피해자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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