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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Jun 16. 2019

그놈의 탈코르셋

탈코르셋, 개념부터 논란까지

  국내의 페미니즘 운동 중에서 가장 활발히 언급되는 것은 단연 '탈코르셋' 이다. 페미니즘 진영에서든 안티 페미니즘 진영에서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탈코르셋 운동, 대체 뭘 목적으로 하는 것일까?

코르셋. 기형적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선은 왜 코르셋이라는 용어를 선택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코르셋이란, 배와 허리둘레를 졸라매어 체형을 교정 혹은 보정하는 속옷을 칭하는 말이다. '졸라매어'라는 말을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정말 숨을 못 쉴 정도로 졸라매는 게 코르셋이기 때문이다.

  이 코르셋은 16~18세기 유럽 쪽에서 여성의 가느다란 허리를 강조하기 위해 유행했던 옷으로, 과도한 코르셋 때문에 뼈와 내장까지 영향을 받았다.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소설에는 곧잘 녀들이 주인공 여성의 몸에 코르셋을 꽉꽉 조이는 장면이 나오며, 영화 아가씨(2016, 박찬욱)에도 히데코(김민희 역)가 숙희(김태리 역)에게 코르셋을 조이는 장면이 나온다.

숙희의 코르셋을 조이는 히데코.

  그렇다면 탈코르셋은 당연히 코르셋을 벗자는 의미이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진짜 코르셋을 착용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단어에서 의미하는 '코르셋'은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하는 여성성'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긴 머리, 화장, 레이스나 리본이 달린 옷, 마른 체형, 붉은 입술, 긴 속눈썹, 브래지어 같은 것들 말이다. 눈에 보이는 것 말고도 여성에게 당연하게 요구되는 '조신함', '순종', '순결함' 등도 코르셋에 포함된다.

  탈코르셋은 이에 반발하여 짧은 머리(단발이 아닌 숏컷 혹은 삭발을 의미한다), 맨 얼굴, 편한 옷과 신발, 건강한 신체를 누려야 한다는 운동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방금 나열한 것들을 '누리는' 것은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다시 말하자면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도 사람이다.'라는 운동이나 다름없다.


  대체 왜 이렇게 당연한 말이 온갖 논란에 휩싸였을까? 안티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남자가 되고 싶은 것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짧은 머리나 맨 얼굴을 한 여성이 남성과 비슷하게 보인다는 의미다. 이 말을 다시 곱씹어본다면 금방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짧은 머리와 맨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왜 여성만이 그 머리를 길게 기르고, 얼굴 위에 화학약품을 발라야 하는 걸까.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면 오로지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있다. 화장. 꼼꼼한 화장이 아니더라도 입술 정도는 바르고 오라는 요구를 받는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악세사리 매장에서 근무할 때였는데, 장신구를 판매하는 매장 특성 상 입술 정도는 발라달라는 점장님의 지적이 있었다. 우스운 것은 점장님은 남성이셨는데, 얼굴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이게 바로 코르셋이다.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지우면 남자같아 보이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인간의 모습이 '남성'에 맞춰져 있는 것 뿐이다. 저번 글에도 언급한 바 있듯이 권력이란 결국 디폴트가, 기본값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의 문제니까.


  그렇다면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무엇이 문제가 됐을까? 바로 '강요'가 문제가 됐다. 탈코르셋을 하지 않으면 페미가 아니다, 라거나 탈코르셋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라는 문장들이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우선 탈코르셋을 하지 않으면 페미가 아니라는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는 말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든 간에 여성 인권에 관심이 있고 성차별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페미니스트다.

  다만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탈코르셋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라는 문장이 정말 강요로 작동하고 있는지다. 많은 여성들이 맨 얼굴로 학교나 직장에 간 날에 "오늘 어디 아파?" "야, 그래도 눈썹은 그려야지." "너무 편하게 온 거 아니야?"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장을 한 날에 "야, 너 그러면 안 되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을 것이다.

  현대 사회가 기본적으로 너무나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모니터를 끄면 사라지는 말들은 강요로 작동하기 어렵다. 기분은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스크롤을 내려 지나치면 된다. 그 말들은 정말로 모든 여성이 탈코르셋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문장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더 탈코르셋을 할 수 있게끔 유도하고자 하는 문장이니까.

  사회 구조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여성상과, 한 집단(그 수가 많다고 보기는 어렵지만)이 온라인 속에서 외치는 말 중에 어느 것의 무게가 더 큰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탈코는 필수라는 말은 무게를 어떻게든 더 늘리고자 하는 문장일 뿐이다.


  물론, 그 말도 누군가에게는 강요로 느껴질 여지가 있다는 점이나 실질적으로 탈코르셋을 하기 힘든 여성들에게 죄책감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 역시 타당하며 또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페미니스트여야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여성 인권을 최우선으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입술을 바르지 않으면 당장 알바를 짤리게 생긴 사람에게 누가 감히 '흉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화장을 하지 않고 출근하면 눈치를 주고, 머리를 숏컷으로 잘랐다고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고, 브래지어를 입지 않으면 수군거리는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다. 그 사실을 알기에 페미니즘은 코르셋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거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더 많은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하나라도 더 많은 코르셋을 벗어던지면 된다, 당신의 탈코르셋은 분명 다른 여성에게 코르셋을 자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그렇게 코르셋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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