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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리 Jun 18. 2024

불꽃

차를 샀다. 처음 보자마자 내 차다, 해서 정비소에서 정비를 받고 은행에서 현금을 뽑았다. DMV에 가서 등록을 하면 진짜 내 차가 되는 건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2시간 정도 늦게 출근한다고 했는데 더 늦어질 순 없어 아저씨(판매자)에게 등록을 맡겼다. 아저씨가 나쁜 마음을 먹고 등록을 하지 않으면 내가 차를 가지고 있더라도 소유권이 나에게 넘어오지는 않는데, 그때는 희한하게 다 괜찮을 것 같았다. 차를 몰고 직장으로 향했다. 3주간 운전대를 잡지 않았는데 또 희한하게 자신감이 생겼다. 집에 갈 때는 고속도로가 무서워 일반 도로로 갔고, 거의 50분이 걸렸다(고속도로를 타면 20분이다).


토요일, 주차장에서 아주 조금만 운전하라는 남자친구를 설득했다. 생각이 확고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자기가 납득이 되지 않으면 의견을 바꾸지 않는다. 실컷 얘기했는데 '음, 그래도 나는 별로야'라는 말을 들으면 웃음이 난다. 놀이공원에서 터무니없이 비싼 음식을 먹고 10분 동안 토론의 장을 펼쳤다. 평일에는 너도 없는데 혼자 운전하다 사고 나면 어떡하냐고, 네가 있을 때 더 연습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래야 자신감도 생긴다고 말하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Okay, just a little bit then."




고속도로가 일반 도로보다 간단하고 쉽다더니, 정말 그랬다. 속도만 빠를 뿐 차 간격만 유지하고 차선만 잘 바꾸면 변수가 많은 길보다 더 마음이 편했다. H마트에서 장을 보고(70%가 간식이었다) painting class로 향했다. 지난번 San Diego 여행에서 사파리 투어를 예약해 놓고 늦어서 돈을 날린 전적이 있기 때문에, 제시간에 도착하려고 애를 썼으나 또 늦었다. 다행히 우리를 들여보내주었고 수업이 막 시작했을 때라 큰 어려움 없이 따라갔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남자친구는 자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몇 번 투덜거렸지만 나는 그가 그린 하나밖에 없는 그림이 좋았다.









40시간 일하는 직장인에서 신분이 하나 더 늘었다. 학생이 되었다. 전혀 다른 업계에서 전혀 다른 일을 배운다. 여름학기는 오늘부터 시작이다. 온라인 수업인데 벌써 과제가 쌓여 있었다. 일하면서 공부하고,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은 남자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평일을 잘 활용해야 한다.


Tick Tick



'Tick Tick'이라는 어플을 활용해 계획표를 만들었다.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운동하러 가고 월수목은 1시간 반짜리 자유 시간이 있다. 금요일은 빨래를 해야 한다. 주말에는 온전히 상대에게 시간을 쏟기 때문에 평일은 치열하게 산다. 남자친구는 12시간을 공부하고 나머지는 운동을 하거나 집안일을 한다. 무엇을 하든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점이 좋다. 요리를 할 때도 크게 크게 대충 하는 나와 달리 아주 잘게 집중해서 양파를 썬다. 놀이공원에 가면 시간 안에 모조리 다 타겠다는 일념을 갖고 뛰어간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부자들이 가장 갖고 싶은 게 시간이라고 말하며 의욕에 불타는 눈동자가 좋다. 낙타처럼 긴, 마스카라를 한 것처럼 위로 올라간 속눈썹 바로 밑 큰 눈동자를 마주하면 정열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더 의욕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사막에서 자란 그. 바다에서 자란 나. 달라서 더 어울리는 우리. 왜 해야 하냐고, why라고 물어보면 why not?이라고 대답하는 남자. 다르니까 더 새롭다. 그의 불꽃이 나를 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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