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만 되면 설렌다. 금요일엔 기분이 좋다. 그가 집에서 뭘 도와달라고 하는 바람에 퇴근하자마자 기차를 탔다. 원래는 운전을 해서 가야 하지만, 저번에 사고가 나기도 해 맘 편하게 기차에 올랐다.
우린 주말마다 치열하게 박물관과 바다를 돌아다녔는데 이번 주말은 여유롭게 보냈다. 여독이 다 풀리지 않았기도 했고 일과 공부를 다시 시작하느라 에너지가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느지막이(희한하게도 함께 있으면 새벽 3시에 자서 오후 2시에 일어나는 방탕한 생활을 하곤 한다) 일어나 어머니 음식으로 밥을 먹고 드라마를 보다 가까운 빙수 집에 갔다. 설빙처럼 사르르 녹는 빙수는 아니지만 오독오독하게 씹는 맛이 있는 하와이안 빙수. 나란히 앉아 빙수를 먹으며 각자 휴대폰을 보는데, 그냥 그 순간이 너무 평화로웠다. 따뜻한 바람, 가족끼리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 혓바닥을 파랗게 물들이는 아이스크림. 그 분위기와 풍경이 왜 이렇게 편안했는지 모르겠다. 내 나라인 듯, 내 동네인 듯, 마치 평생을 그곳에 살았던 사람처럼. 간만에 느끼는 기분 좋은 감정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미적거리다 겨우 일어났다.
일요일엔 컨디션이 좋지 않은 그를 위해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Passenger prince가 되겠다며 의자를 잔뜩 뒤로 젖히고 편히 지낼 줄 알았는데 불안하게 운전하는 나 때문에 그리 쉬지도 못했다. 4 way stop sign에서 제일 늦게 도착해 놓고 먼저 출발하기도 하고(변명하자면 서긴 섰는데 스탑싸인을 못 봤다), 황당한 실수를 연발했는데 조언을 하면서도 너는 배우는 단계고, 이렇게 실수해야 다음에 안 한다며 되려 나를 위로하던 너. H마트만 가면 뭐가 씌는지 주체를 못 하고 담아대는 그 덕에 영수증이 또 무척 길었다. 네가 좋아하는 게 뭐냐며 하나도 아니고 두 개씩 마구 집는 그를 말리면서도 즐거웠다.
야리는 야리boy~가 되었다. 부를 때마다 예쁜 목소리로 대답하는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 나 혼자선 못 드는 거대한 고양이 모래를 사 화장실을 싹 갈았다. 싫을 텐데도 드는 대로 얌전히 안겨 있는 야리. 자기 좋을 때만 골골하고 평소엔 잘 보이지 않는 새초롬한 메리는 갈수록 예뻐진다. 양아빠에서 아빠로 승격한 그는 야리를 무척 사랑한다. 신기하게도 낯 가리지 않고 그를 무척 따랐던 야리와 메리, 그걸 보며 그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동물이 좋아하는 사람은 악하지 않으니까. 동물은 감이라는 게 있으니까.
일요일 밤만 되면 서운해진다. 다시 한 주가 시작이니까. 일요일에 헤어지며 I'm gonna miss you, 하니까 그가 그러더라. We see each other soon. 금요일이면 보는데 무슨 소리냐고. 밤바다에선 끝없이 펼쳐진 검은색 속 한낱 먼지가 된 기분이라 그런가 솔직해진다.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너는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디에 집중하냐고. 그는 현재라고 했다. 그런데 너한텐 미래 얘기도 많이 하게 된다고. 너랑 얘기 많이 했으니 당분간은 미래 생각 안 할 거라고. 나는 과거 아니면 미래에 사는데. 불안한 나는 웃다가도 내가 너무 행복한 거 아닌가 걱정한다. Self-discipline이라는 말이 사람이라면 그가 될 것 같다. 생각까지 조절할 수 있다니, 생각에 주도권을 쥐어준 나는 그가 신기하다. 계속 이야기하지만, 그는 참 올곧다. 올해 목표, 내년 목표, 3년 후 목표,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필요한 것, 싫어하는 것, 용납 안 되는 것. 수식처럼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그. "I said we do it, we do it." 한다고 했으면 하는 것. 걱정에 잠식되지 않는 것.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 자기만의 규칙이 있는 것. 나는 또 그에게서 배운다. 대나무 같은 그에게서 배운다. 현재를 사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