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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리 Jun 25. 2024

조슈아 트리에서 배운다

토요일 아침, 8시에 맞춰 놓은 알람이 다 울리기도 전에 그가 말했다.

"30분만 더."


조슈아 트리에 가는 날이었다. 사막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37도가 넘는 더위에 등산을 간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방문자 센터에 들러 지도를 챙기고 주의사항을 듣던 때, 직원이 말했다. 너무 더우니 오후 7시 이후에 별이나 보러 가라고. 숨쉬기가 힘겨웠다.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쳐다도 안 봤던 찜질방 불가마에서 나는 맥반석 달걀 냄새가 솔솔 났다.

"나 녹고 있어."

"Yeah, you're melting, but molting at the same time."


덥다고, 힘들다고 해도 괜찮다는 말만 돌아왔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기는 이 더위에서 평생을 살았다고 말하며 차 에어컨도 못 켜게 하는 걸 겨우 말렸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손을 꽉 쥐고 걷다 보니 공기가 선선해진 게 느껴졌다.


마지막 코스였다. 끝나고 딸기, 초코, 바닐라 맛 밀크셰이크 10개를 시켜서 다 먹을 거라는 시덥잖은 소리를 하며 걷고 있었다. 어느새 이정표가 사라진 걸 발견했다.

"우리 길 잃은 것 같아."


워낙 넓은 공원인 데다 네트워크도 연결되지 않아 오프라인으로 다운로드한 구글맵에 의존해야 했다. 우리 위치만 보여줄 뿐 길을 안내해 주는 건 아니라 불확실하더라도 무작정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늘도 쉴 곳도 없어 햇빛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직진했다. 둘 다 말이 없어 자박자박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안 되겠는지 그가 저 앞에 보이는 바위 산을 넘어가자 했다. 자신이 없었다. 헛디디기라도 하면 틈새에 깔려 타 죽을 것 같았다. 선택권이 없었다. 빙 돌아가기엔 너무 지쳤고 대충 챙긴 생수가 바닥을 보일 때였다. 결심이 서고 나자 다음은 쉬웠다. 앞에 돌에만 집중하며 네 발로 산을 타 넘기 시작했다. 돌에 살이 쓸려도 개의치 않았다.

"차가 보여!"


주차장까지 한참을 걸어야 했지만, 다른 차들이 보인다는 것에 안도했다. "Do not die today"라는 표지판이 곳곳에 보일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어야 하는데. 차를 피해 아스팔트 도로를 걸었다.

"나 사실 조금 무서웠어."


그가 처음으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입밖에 내었다. 넉넉히 이틀은 버틸 만한 휴대폰 배터리가 있었고, 길을 잃어도 조난당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는데 바위가 튼튼하지 않아 네가 밑에 깔릴까 봐 무서웠어. 괜찮아서 다행이야. 머리가 아파오고 더는 걸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내가 사실은 추억을 위해 길을 잃은 척한 거다, 물만 더 있었어도 3시간은 더 걸을 수 있다,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버텼다. 멀리 보이는 내 차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쿠키 상자에 또 하나의 쿠키가 생긴 거야."

David Goggins는 'Can't Hurt Me: Master Your Mind and Defy the Odds'에서 얘기했다.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 한계를 뛰어넘은 경험을 쿠키처럼 차곡차곡 모아 유리병에 저장하라고. 힘들 때 꺼내보고 또 다른 쿠키를 만들라고.










'긍정'이라는 단어가 싫었다. 'Toxic Positivity'라는 단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을 유지하는 게 어리석은 짓 같았다. 살면서 본 사람 중 가장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이성적인 그를 만나며 어쩌면 그런 마음가짐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긍정에 곁을 내줬달까. 밤바다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렸을 때도, 차를 주차했는데 어디 했는지 몰라 해변 주차장이란 주차장은 다 돌았을 때도 그는 당황하는 법이 없었다. 일이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을 땐 상대방 탓을 하거나 짜증을 낼 수도 있는데, 그는 여유롭게 웃기까지 했다.

"미래가 보이는 건 아니지만 결국 찾을 거라는 걸 알아. 근데 왜 당황해야 해?"


내가 너무 덥다고, 지금 녹고 있다고 투정 부릴 때 그는 'molting'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너는 나비가 되고 있어. 땅을 기는 애벌레에서 하늘로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어. 어떤 고통도 의미 없는 게 아님을. 불운한 일이 꼭 부정을 뜻하는 것을 아님은 그는 끊임없이 얘기한다. 나는 너에게서 배운다. 나보다 어린 너에게서 배운다. 사는 게 나쁘지 않음을. 무엇보다도,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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