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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리 Aug 17. 2022

부산에 가면

불안한 밤

기분이 꿀꿀해졌다. 약을 늘리고 매일 밖에 나가는데도 무기력은 습관처럼 찾아온다. 기다리는 시간은 피말린다. 두 개 기업에 지원했고 이력서를 열람한 지 3일이 지났다. 그중 한 기업이 똑같은 채용 공고를 다시 올렸다. 지원자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건가? 나는 또 하염없이 기다리겠지.


스터디에 들어갔다. 월/수/금 9시에 함께 스터디를 한다 했다. 갑자기 마음에 비가 내리는지 도통 모르겠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나는 안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요즘은 매일 자기 전 책을 읽는다. 한강 작가님의 '바람이 분다 가라'를 읽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른다. 같은 눈을 가진 사람들은 생존하지 못한다니. 나무는 핵심이 '사랑'이라 했다. 빌어먹을 사랑. 파멸을 불러오는 사랑.






추석 승차권을 예매했다. 부산에 가기 전엔 과거가 떠오른다. 하체가 통통했던 내게 은근히 눈짓하던 친척들. 덕분에 중학교 시절부터  상의를 입었고 가장 날씬해 보이는 바지를 입었다. 다이어트도 했다. 친척들은 내가 '성격이 세다' 했다. 결혼하고 싶으면 성질  죽이라는 말도 했다. 내가 언제 ' ' 사람이 되었는지  수가 없다. 내가 6 때부터 시댁에 가지 않는 엄마 때문인지. 엄마와 친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때문인지. 친척들은 아무도  사정을 모른다. 외가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엄마한테 연락하고 집에도  들어가라' 말한다. 아무렇지 않게 반응한다고 해서 상처입지 않은  아닌데, 누구도  사정은 묻지 는다. 나는 그냥 불효자식, 그뿐이다.


내려가기 전엔 잠을  잔다. 태연한 얼굴로 갈비뼈를 부숴 심장을 찌른다. 내가 평생 듣고 싶었던 말은 '너를 이해한다'였다.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네가 괜찮다면 됐어, ' 따위의.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편도 6 , 2시간 20분이 걸려 부산에  당일치기를 하고 돌아가는 심정. 보고 싶은 사람있지만 ' 곳이 없어서' 그냥 올라가는 심정.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두 명으로 이루어진 사이좋은 가족 옆의 이방인이었다. 엄마는 화가 나면 '내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 질렀고 나가지 않으면 쌍욕을 하며 초를 셌다. 어쨌든 나갈 수밖에 없었기에 나중엔 그냥 나갔다. 할머니 집에서 자고 돌아오면 엄마는 '반성하라고 나갔더니 놀고 왔다'며 또 나가라고 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 벤치에 앉아 우리 집 동향을 살폈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문을 세게 닫으면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었다. 몸이 굳었다. 엄마 기분이 어떤지 24시간 눈치 보며 살아야 했다. 나는 번호판을 더해 숫자로 점을 쳤고 '식후 과일을 먹으면 혼난다'는 법칙까지 만들어냈다. '좋은 일이 오면 반드시 나쁜 일이 온다'는 명제도 믿었다. 기쁜 일에도 온전히 웃을 수 없었고 나중엔 웃음을 잃었다.



버스에서 내리다 머리를 박았다는 이유로 기사에게 쌍욕을 하던 엄마는 갑자기 화살을 내게로 돌렸다. '지금부턴 각자 돌아보자'고 했다.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아빠는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아빠 엄마는 내 앞에서 다정하게 걸었다. 나는 다섯 걸음 뒤에서 그들을 바라봤다. 화가 나서 숨이 안 쉬어졌다. 팔딱거리다 '너무 화가 난다'고 털어놓고, 베트남 사원에서 핏대를 세우며 싸웠다. 엄마는 본인의 불우했던 가정사를 들려주고는 안아주며 '네 뾰족함이 이제 사라질 거다'라 했다. 말 한마디로 없어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장례식 이후 비밀번호를 바꾸며 '아빠만' 출입하도록 했던 엄마를,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고백하자 무심한 어투로 '팔이 부러지면 병원 가는 것처럼 너도 나을 수 있다'는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해달라 하자 '나 그런 말 못 하는 거 알잖니' 했던 엄마를 난 결코 용서할 수 없다. 그래도 내 마음은 유약해지고 타인의 한 마디에 치명상을 입고 비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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