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코로나에 걸렸다. 아빠는 안방 앞에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 둔다.
오늘도 매한가지였다. 아빠는 아침 7시에 아침과 점심을 방 앞에 두고 할아버지 댁으로 와 차례를 지냈다. 3시쯤 넘어 아빠와 난 집으로 향했다. 내게 집에 간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잘 데가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안방에서 격리하니 나는 내 방에서 조용히 잠만 자고 나오자.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는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 아빠가 물으니 화를 냈다. “코로나 걸린 사람 기분이 어떨 것 같은데??” 쏘아붙였다. 목이 졸렸다. 쩔쩔매는 아빠와 냉정한 엄마 목소리는 나를 10년, 15년 전으로 내몰았다. 엄마가 화가 나선 안 된다. 엄마 기분이 먼저다. 포인트를 찾기 힘들었지만 엄마는 그냥 자주, 기분이 나빴다. 말을 안 하거나 내쫓았다. 비밀번호도 못 치도록 차단된 문을 뒤로하고 거리에 나갔다. 비 오는 밤 수풀 속에 숨어 보는 세상은 전쟁터였다. 안전한 곳이 없구나. 나를 품어줄 곳은 없구나.
눈물이 솟구쳤다. 무기력한 어린아이가 아닌데도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 바로 버스를 예매하고 소리를 죽였다. 집에 있으면 안 돼. 안전한 곳으로 우선 나가.
이모 집에 가지 못할 것 같아 전화를 걸었다. “이모, 나 바로 올라가게 됐어. 엄마 기분이 나빠서.” 이모는 “네가 코로나 걸려보지 않아 모른다”며 짜증 내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독하다고 했다. 너도 엄마랑 똑같다고 했다. 아프다는 것이 상대방을 상처 줄 권리를 뜻하는 건 아니라고, 할머니 장례식 때 날 쫓아낸 엄마 기억나냐고, 나는 엄마를 평생 용서할 수 없다고 하자 이모는 황당한 듯했다. 엄마 때문에 정신과를 다닌다고, 약이 없으면 잘 수 없다고 했더니 이모는 “염병 떨지 말라” 했다. 진짜 우울증 있는 사람이 들으면 웃는다고. 네가 무슨 우울증이냐고 비웃었다. 전형적이었다. 우울증을 고백한 조카에게 우울한 사람에게 하지 말라는 말을 모두 한 이모는 “내 병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자 당황해했다.
우울을 상대방에게 증명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이건 내 투쟁이니까. 나는 진정되었고 글을 쓸 만큼의 정신도 있다. 병원에 너무 늦게 왔다며 혼잣말하던 의사 선생님. 상담 더 하자 붙잡던 상담 선생님. 재작년 설이 마지막이라 했던 난 지금까지 살아있고 이전보다 확실히 나아졌다.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지만 나아졌다. 모진 말은 받지 않으면 계속 그 사람 것이 된다. 글을 쓰며 더 확실해졌다. 나는 일어설 힘이 있고, 주위엔 날 사랑하는 나무들이 있다. 울어도 된다. 무너져도 된다. 모든 것이 뚜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