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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리 Sep 20. 2022

불리한 경기가 늘

패배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시디님이 시키신 '오늘의 돌멩 아카이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칸 라이언즈 수상작에서는 PROBLEM, INSIGHT, SOLUTION, KEY COPY를 정리한다. 국내 TVC에서는 FULL COPY와 KEY COPY, 그리고 그것이 왜 나에게 와닿았는지를 적는다.


어제와 금요일은 촬영이 있었다. 시디님은 촬영장 가기가 제일 싫다고 하셨는데, 뭔지 모를 변수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과 촬영장에서 그다지 할 것이 없다는 점이 이유였다. 2초 나갈 컷을 50번 넘게 찍는데 나는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잘 모르겠다. 결국 조금 졸았다.


어제는 조금 여유가 있어 시디님께서 좋은 광고 추천을 해주셨는데, 15년도에 온에어 된 월드비전 '자립마을 아이들' 캠페인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40&v=gy5FG7x0SYE&feature=emb_title

자립마을 프로젝트 - 유지태 편 (2015)



카피는 다음과 같다.


세계의 자립마을 아이들에게

달리기라고 생각하자

너흰 더 먼 곳에서 출발했을 뿐이고

더 많은 허들이 앞에 있을 뿐이라고

언젠가 우리가 떠나간 날

너흰 알게 될 거야

불리한 경기가 늘 패배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걸

후원이 끝나도 마을 스스로 아이를 돌보게 만드는

자립마을 프로젝트

잘 가요

이 캠페인은 월드비전과 함께합니다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먼 곳에서 출발했고 허들도 많지만, 불리한 경기가 늘 패배로 끝나는 것은 아니란다. 행복하지 않았던 유년시절, 늘 공포에 질린 채로 살아왔지만 네 과거가 현재로 이어지는 건 아니란다.


연민을 극도로 자극해 도와주지 않는 나에게 혐오감이 들게 만들거나, 적선을 한다는 시혜적인 태도로 보지 않아 좋았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뻗어나갈 수 있는 광고를 만들어야겠다, 이것처럼 종종 들어가 다시 되새길 수 있는.






사회생활은 어렵다. 이전 직장에선 믿을 사람 하나 없었다. A와 친한 듯 보였던 내 동료 B가, "저 고졸은 상대 안 해요." 말했을 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A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내 어떤 것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내게 잘못을 찾는 건 의미 없음에도. 말이 돌고 돌다 보니 내 속을 드러내 보이기 쉽지 않다. 지금 직장엔 존경하는 시디님도, 무심한 듯 날 챙기는 사수도 있음에도. 모든 것이 전 직장과 다르지만 아픔은 아직 남아 있다.





이모를 잘라내고 나니 엄마는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차단했고 모든 연락을 거부했음에도 마음이 들쑥날쑥하다.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약이 없으면 못 잔다 고백했는데 염병 떤다고 할 수 있지. 2년 전 설, 유퀴즈에 나왔던 공무원분이 돌아가셨다. 이모는 혀를 쯧쯧 찼다. 나 또한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이 내 마지막 명절이라 생각했다. 매일 계획을 수정하면서, 이 약속만 나가고 죽자 생각하면서 선고를 미뤘다. 결국 나는 다시 살아났지만 아직 후유증은 남아 있다. 내 꺼멓게 죽은 눈과 멍한 시선을 봤음에도, 생기 없는 몸짓과 늘어가는 한숨을 보았음에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바다가 훤히 보이는 카페에 가서도 죽음을 생각했고, 하루 종일 울었으며 엄마 아빠가 말을 주고받는 차 안에서도 먼 곳만을 바라봤다. 도움이 필요했지만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게 그리 무심했으면서,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면서 이모는 함부로 뱉었다.






이사를 계획하고 고양이 입양을 알아보면서 나무와 난 꼭 붙어 지내고 있다. 우린 이사도 갈 거고 첫 번째 아이도 입양할 거다. 우린 좋은 집사가 될 거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되어서도 붙어살겠지. 뒤숭숭한 꿈을 꾸며 하루를 시작하지만 그가 있어 웃는다. 완전한 아이가 되어 어리광을 부린다. 나무는 그것도 좋다고 다 받아준다. 내 회복탄력성을 높여주는 사랑스러운 사람, 내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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