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쥔 손을 풀어나가기

너그럽고, 다정하고, 사랑하기

by 돌멩리

나무는 명상을 좋아한다. 눈을 감고 혹은 뜨고,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모습을 보면 우리 나무는 정말 태생부터 나무란 생각이 든다. 가슴이 답답해 명상은 몇 번 해본 적이 없다. 무한번식하는 생각을 견디지 못해 급히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뜨기 일쑤다. 성숙한 사람은 정적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TV 없인 못 사는 엄마를 생각하며 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정적을 못 참는 사람은 나였다. 혼자 가만히 생각에 빠지거나 몰입한 순간이 적다. 언제나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문장을 보니 마음이 따끔거렸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자기 몸을 드나드는 호흡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그만큼 자기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사는 것입니다.”



승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스님이 쓴 책은 무조건 소장하는 편이다. 이 책은 올해 읽은 최고의 책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을 정도로, 강조를 많이 해 책이 흰색이 아닌 노란색이 될 정도로 인상 깊었다.


XL 2023년 꼭 읽어야 하는 책 1위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불안을 쉽게 다스렸다. 삶의 태도를 바꾸었다. 일적인 성공, 명예, 부를 중요하게 여기던 나를 돌아보았다.

행복이 바깥에서 온다고 믿고 싶은 본능은 그만큼 강력합니다. 가령 화려한 경력을 쌓아 남들에게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면 한동안 꽤 우쭐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누구나 잠시 멈춰 생각해보면 깨닫게 됩니다. 그 삶은 마치 달콤한 디저트만 먹으면서 사는 것과 같다는 말이죠. 디저트는 눈에 아름답고 입에 달콤하지요. 하지만 생명을 이어나가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제공하진 못합니다.

디저트만 먹는 삶. 인정욕구가 높은 나는 그만큼 내 기분을 타인에 의존한다는 것과 같다. 결국 행복은 내면에서 온다고, 행복은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요 근래 불안이 치솟았다. 주체하지 못해 나무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제 8개월이 지난 우리 야리가 떠나갈 때를 생각하며, 나무와 내가 이별하는 먼 미래를 생각하며 불안해했다. 그럴 땐 약을 먹기도 싫었다. 약으로 내 감정을 통제당한다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약을 거부했다.

그러나 세상이, 누군가가 우리 생각대로 바뀌어야만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압박감, 슬픔, 외로움, 불안, 초라한 기분에 시달린다면 보통 거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집착하며 좀처럼 놓지 못하는 어떤 ‘생각’이 불행감을 초래하는 겁니다. 그런 생각은 대체로 그 자체로 보면 꽤 합리적이고 그럴싸합니다. 누군가가 뭘 ‘했어야 했다’라는 식이죠.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생각은 ‘내가 그랬어야 했다’라는 생각입니다. ‘더 돈이 많았어야, 더 나았어야, 더 날씬했어야, 더 성숙했어야 했는데.’ 이 함정에 빠지면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마구 날뛸 때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먼저 조심스럽게 한 발짝 멀어집니다. 그러고는 말하는 겁니다. '그래, 알았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그래, 알았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마법의 문장이다. 나 자신에게 읊조리는 거다. 온갖 부정적이고 최악의 생각들, 그래. 너희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어. 나중에.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저자가 가르치는 마법의 동작이다. 손을 꽉 쥐었다가 펴기.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 내가 주장하는 규칙도, 내 신념도 모두에게 옳은 것은 아니다. 그것을 누군가에게 적용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내려놓자. 힘을 빼자. 경직되어 있는 근육을 풀자.

저는 여러분이 손을 조금 덜 세게 쥐고 더 활짝 편 상태로 살 수 있길 바랍니다. 조금 덜 통제하고 더 신뢰하길 바랍니다. 뭐든 다 알아야 한다는 압박을 조금 덜 느끼고, 삶을 있는 그대로 더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그래야 우리 모두에게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되니까요.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돌아가지 않는 일을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자신을 원래보다 더 작고 초라하게 만들 필요 또한 없지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목을 옥죄며 살 것입니까, 아니면 넓은 마음으로 인생을 포용하며 살 것입니까? 자, 쥐고 있던 주먹을 펼쳐보길 바랍니다.



내가 전율을 느꼈던 문장이다. 걱정쟁이인 나를 다독이고, 내 진정제가 되어주는 문장. '당신이 알아야 할 때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미리 걱정하고 눈물 흘릴 필요 없다. 때가 될 때 알게 될 것이다. 안달하지 않아도 된다.

“잘 들어보세요.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무작정 믿지 않아야 합니다.
주의가 흐트러지지 않아야 합니다. 현재 상황을 온전히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 우주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라
운행된다는 근본적 진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진실이 뭐냐고요?”
당신이 알아야 할 때 알아야 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까지 불안해하는 대신, 결국 모든 것이 순리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으며 사는 데 익숙해진다면 더 높은 차원의 자유와 지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미래를 통제하고 예견하려는 헛된 시도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럴 용기가 있다면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과거는 곧 원망이었다. 금기였다. 분노였다. 절망이었다. 내게 상처를 준 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사실이 증오스러웠다. 정신과에 와야 할 사람들이 오지 않고, 내가 약을 먹는 사실이 싫었다. 저자는 대신 이렇게 이야기한다. 죄와 사람을 분리해라. 사람과의 관계를 쉽게 끊지 마라. 그것으로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 용서를 논하긴 아직 이르다. 관계를 회복할 마음이 추호도 없다. 그래도, 그가 하는 말이 이해되었다.


나는 재앙적 생각을 한다. 빨빨거렸던 우리 야리가 하루아침에 싸늘해지는 순간. 사랑을 속삭였던 내 나무가 하루아침에 차가워지는 순간. 그것이 언젠가 올 것이라고. 나는 항상 준비되어야 한다고.


나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행복하다가도 겸손해지고 가라앉았다. 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 구절이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동안 힘들었지. 미래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해. 유일하게 예측하는 미래는 모두가 죽는다는 것이지. 그러니 현재를 살아. 지금을 즐겨,라고.

우리의 마음은 감정적으로 두드러졌던 일, 특히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일을 기억하도록 프로그램이 짜여 있습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 선조는 사바나 초원에서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거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 아닙니다. 흔히 감정적으로 격양된 상황에서 선별한 단편적 조각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그 조각들은 우리가 투영하는 미래를 위한 기초를 제공하고,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를 위한 토대가 됩니다. 그것은 미래가 아닙니다. 우리의 가정이고 추측일 뿐이지요. 확실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누구도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다정의 힘을 믿는다. 그래도 불쑥불쑥 타인에게 짜증이 나곤 한다.

“자기 행동과 말에 책임지는 사람, 진실을 고수하고 규칙을 존중하는 사람, 다른 사람을 일부러 해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열대의 밤하늘에 뜬 보름달처럼 구름 뒤에서 서서히 나타나 온 세상을 환히 비춰준다.”
우리가 내보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세상은 세상 그 자체의 모습으로서 존재하지 않지요. 세상은 우리의 모습으로서 존재합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보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진실이 우리 존재의 일부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삶 자체에 다가갈 유일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다정하게, 다정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보는 모든 사람 한 명 한 명은 그들만의 전투를 치르고 있다고. 그들은 지쳤고 힘들다고. 그러니 다정하라고. 친절하라고.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불평하기보다, 내가 먼저 다정을 실천하면 결국 나는 그런 세상에 살게 된다고 말이다.



간만에 함께 인생을 걸어갈 책을 만났다. 한 순간 한 순간이 보물 같았다. 명상이 습관이 되고, 너무 주먹을 꽉 지지 않으며 타인에게 너그러워지는 순간이 오겠지. 함께하자,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