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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Jun 04. 2022

ARE YOU LOST?

    

 

  역까지 가는 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집에가서 이 걸 써야지. 이 순간을 기록해야지. 나는 살아있다고 느끼는 이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싶은 충동을 절대 이기지 못할 거니까. 정말 숨 쉬는 순간, 바람을 느끼는 순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순간, 걷는 순간, 걸으면서 느껴지는 발목의 고통까지. 살아있다는 걸 느낄 때마다 드는 희열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다. 이정도의 문장과 표현력을 가진 게 아쉬울 뿐이지. 그래서 소설을 쓰고 싶은걸까. 아니 글자 자체를, 단어를 사랑한다. 모든 단어가 가진 의미와 그 의미를 넘어선 것들까지 모두를. 단어 하나만 들어도 여러가지가 떠오르는 이 공상들을 놓치면서도 사랑한다.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답게 느껴지고 사랑하게 되버리는 일상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나만의 순간들을. 마스크를 벗고 아무도 없는 밤 거리를 걸으면서 MUSE의 Undisclosed desire를 들었다. 가로등과 가로수와 시멘트 블록 사이의 자동차와 교회와 편의점 사이를 걸으면서 상상한다. 아무것도 없는 거리를. 깜깜한 거리를. 모든 것이 만들어진 세상 속에서.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도 불행하게 살아가고, 고통을 호소하는 나를, 아주 작은 인간을, 잠시나마 느꼈다가 돌아온다. 늘 그렇듯.


 자아를 인식하고 나서부터 정체성을 찾는 데 모든 시간을 보냈는 데 나는 누구인가 왜 살아야 하는 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해 모든 시간을 다 쏟았다.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쏟다 죽을 건데 이젠 적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그것 뿐이야. 정신의 자유를 주고 싶어. 충분히 잘하고 있고, 괜찮아. 거짓말로 쓰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여태껏 불안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모든 게 불안해서 견딜 수 없어. 차라리 죽어도 괜찮다고 인정하자. 그게 나아. 내가 어떨지는 나도 잘 모르잖아. 잘 알고 있는 척을 하고 있을 뿐이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매일 글을 쓰려고 뮤즈를 다시 듣는다. 어쩌다 알게 됐는 지 모르지만, 뮤즈는 나의 뮤즈니까. 주로 우울하거나 제정신 아닐 때 많이 들었다. 평소엔 잘 듣지 않는다. 몰입하다보면 일상생활이 어려우니까. 미치지 않고서도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듣고 있다. 미칠 것 같은, 미치기 직전의 정신이 필요하다. 지금은.


오늘의 가장 큰 수확은 소설 제목이다. MUSE의 1집 Showbiz 중에 Sunburn을 좋아해서 그 곡을 듣다가 결정했다. 제목은 [화상]이다. 가제인 검은 반점보다 좋다. 불이 왔다간 사라진 뒤엔 검은 반점이 남는다. 그녀는 하나의 불이고, 형상도 없고, 형체도 없고, 타오르고, 사라질 것이다. 강렬한 고통과 함께 남은 건 반점 뿐이다. 그녀가 사라진 뒤에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삶을 또 살겠지.

어쩌면 팔 다리가 하나 없어도 그녀가 있는 편이 행복할 지도 모른다. 살아있다는 기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달거리 전깃줄 조명 인위적인 만들어진 발목 실눈 흩날리는 숨겨진 만족하지 않는 눈 화상 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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