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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Mar 04. 2023

고양이의 방탕함 <삶>

4

 터크는 매일 1페니를 손에 쥐고 싯-업의자에 앉았다. 구세군이 제공하는 숙소 중에 가장 낮은 금액이지만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2페니를 내면 행오버의자에 앉아 기다란 줄에 몸을 반으로 접어 편하게 걸칠 수 있었고 저녁엔 빵과 음료를 내주었다. 4페니를 내면 네모난 나무 관에 누워 모포를 덮고 잘 수 있었고 아침 저녁으로 빵과 음료를 제공해주었다. 공장에서 종일 먹는 거라곤 딱딱하게 말라붙은 빵 반 조각과 설탕이 조금 들어간 밀크티 한 잔뿐이었다. 14시간을 꼬박 일했지만 휴식시간은 고작 45분이었다. 고용주들은 그마저도 참지 못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일터로 내몰았다. 한 달에 10파운드를 벌었지만 남는게 없었다. 그래서 돈을 벌러 도시에 왔고 키에르와 키티는 농장 외곽에 학교를 다녔다. 돌봐주는 고모에게 생활비를 부치고 둘을 학교에 보내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고모는 그다지 상냥한 편이 아니었고 마찬가지로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고모부는 술을 자주 마시고 고모를 때리곤 했다. 고모는 자신의 아이들 네 명 중에 남자아이들만 일을 시켰다. 여자아이들은 똑같이 일을 해도 돈을 반값만 주었기 때문에 학교에 보내고 남는 시간에 농장일을 돕게 했다. 키에르나 키티도 학교를 가지 않는 시간엔 언제나 일을 하고 있었다. 키에르는 다섯 살 때부터 굴뚝 청소를 했고 키티도 여섯살 때부터 성냥공장에서 일했다. 어쩌다 하루 쉬는 시간이 생기면 그들은 고모와 고모부를 도와 농장일을 했다. 그렇게 세 남매가 모두 일을 해도 형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터크는 열 살 때 학교를 졸업했다. 배운 거라곤 글을 조금 읽고 쓰는 것과 급여나 물건을 사고팔 때 하는 간단한 계산 정도 였다. 글을 익혀둔 덕분에 키에르가 보내는 편지를 읽을 수 있었다. 가끔 키에르는 편지에 1페니에서 2페니정도 부쳐주었다. 그럴 때마다 4페니짜리 나무관에서 편하게 누울까 하는 고민에 휩싸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4페니는 과했고 2페니의 행오버면 족했다. 공장에서 내주는 부실한 빵조가리보단 나았다. 주렁주렁 매달린 사람들은 옆에 누가 있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늘어져있었다. 언젠가 한 번 가운데 자리에 앉은 적이 있었는데 양 옆에 사람들이 쏠려서 어깨가 아프고 숨을 쉬기 힘들었다. 마치 이대로 잠을 청하면 무게에 짓눌려서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그날은 2페니를 내고 빵과 음료를 얻어먹었지만 결국 1페니 싯-업에 앉아 졸았다. 그래서 2페니의 행오버에 갈 땐 항상 느지막이 양쪽 구석자리 중 하나에 앉았다. 10분이라도 더 자야 했지만 몸집이 작은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터크는 자신이 사라지는 건 두렵지 않았으나 남겨진 동생들이 눈에 밟혔다. 끝이 어떻게 되든 좋지 않을 건 분명했다. 확신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장에 출근하면 하루에도 여러 명이 다치거나 죽었다. 과로로 일하던 자리에서 쓰러져서 영영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기계에 손이 끼어 뼈가 드러날 정도로 절단되어도 방법이 없었다. 과다출혈로 죽거나 운 좋게 살아남아도 병원에 갈 만한 여력이 없어 괴사 되어 합병증으로 죽거나 했다. 터크도 마찬가지였다. 내일은 약속되지 않았다. 그날 아침에 눈을 떠야 내일이었다. 내일이나 모레나 중요하지 않았다. 일하는 내내 잠들지 않도록 스스로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허벅지를 꼬집고 팔뚝을 꼬집었다. 그래도 안되면 감독관들이 기다랗고 얇은 막대기로 때리곤 했다. 조금만 심하게 때려도 약해진 피부가 찢어져 그 사이로 피가 배어 나왔지만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벽에 머리를 박을 필요도 없었고 직접 몸에 상처를 내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어 좋았다. 터크는 그 고통으로 잠을 잘 수 없어서 좋았다. 잠이 들면 죽은 사람들이 꿈에 나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는 그의 부모의 얼굴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공장 노동자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하나같이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굳게 다문 입을 벌리는 순간 그다음 얼굴로 바뀌고 그다음 얼굴로 바뀌었다. 가끔은 얼굴에 피를 잔뜩 뒤집어쓴 사람도 있었고 입가에 피를 머금었다 토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이도 성별도 알 수 없었다. 터크는 꿈속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억울한 게 있다 한들 들어주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그들이 꿈속에 나오기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는 게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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