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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Feb 22. 2023

고양이의 방탕함 <개구리와 손가락의 상관관계>

3

 캐시는 다정한 키에르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키에르의 손가락 개수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네 개의 손가락, 총 여덟 개의 손가락. 열 개의 발가락에 대해 적었다. 이 비밀은 혼자만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구도 알지 못하게 할 것이다. 키티는 키에르의 없어진 손가락을 가지고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키에르는 잘 웃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는 데 캐시는 그런 점을 좋아했다. 하지만 오늘은 어떠한가. 평소와 다르게 다정한 눈빛과 말투로 없어진 손가락에 대해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 왜 아무도 모를까. 없어진 손가락들을.

 언제까지 없어진 손가락에 대해 얘기할 건 지 궁금하겠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남아있고 할 이야기가 많으므로 당신이 잊을 때쯤 다시 시작될 것이다.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많은 이미지들이 쌓여있다. 그중에 당신에게 무엇을 보여줄지 선택하는 중이고 어쩌면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될 수 도 있다. 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상상 속에 한 번쯤 읽거나 봤을 법한 수많은 것들 중에 하나를 꺼내서 보여줄 것이다. 지금은 한 소년과 소녀 그리고 개구리와 손가락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 서술하든 진부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고 그 사실에 대해 반박하고 싶지 않다. 반박할 수 있는 방법도 없거니와 일방적인 서술이나 나열은 어차피 일종의 폭력이므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믿는다.

 캐시의 가족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금세 눈물을 흘리고 걱정하고 잘 웃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캐시를 무척 사랑하고 아꼈지만 지루한 가족들이었다. 가족들 사이에서 캐시는 피어나는 한 송이의 꽃이었다. 아름다운 금발 머리는 찰랑였고 부드러운 눈동자 안에 날카로운 눈빛이 있었다. 그리고 도톰한 입술 아래로 사랑스러운 말을 터뜨리곤 했다. 캐시는 지루했고 그럴 때마다 키에르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열개든 여덟 개든 손가락마저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내일부터는 다시 키에르에게 다정하게 굴어야지. 그리고  없어진 손가락들을 찾아서 땅에 심을 계획을 세웠다. 손가락이 자라서 세 명이 된다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캐시는 아무래도 좋았다. 다정하거나 웃지 않거나 잔인한 키에르 모두를 만나고 싶었다.

 어린아이의 과대망상인가. 그렇게 생각해도 좋았지만 그 마음의 거짓은 한 톨도 없었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일은 마치 교회에 앉아서 의미 없는 설교나 찬송을 듣는 것처럼 괴롭고 지루한 일이었고 그건 마치 그들이 말하는 지옥 같은 일이었다. 그런 날들은 굉장히 많았다. 그걸 견디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가 키에르였을 뿐이다. 그러니 손가락에 연연하는 캐시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작은 일은 큰일이 되고 어떤 사건이 되는 것이다. 각자 자기만의 작은 지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 자기의 지옥이 더 크고 깊고 불행하다고 얘기하는 데 그 안에서 가장 깊은 사람들은 언제나 말이 없다. 어느 정도의 깊이인지 말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 그들의 몸은 숨을 쉬고 살아있지만 눈빛도 언어도 아무것도 없다. 몸 안에 지옥을 담고 살아간다. 누구도 건져낼 수 없고 꺼낼 수도 없다. 구토를 하게 할 수도 없고 몸을 잘라낼 수도 없다. 걸어 다니는 지옥을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간혹 가다 겉으로 전혀 티가 나지 않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지만 조금만 관계를 가져보면 알게 된다.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살아가기 위해 어떤 위장을 하고 있는지.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자기 안에 끌어 들어야 살 수 있다. 순간적으로. 자기 안의 걸려든 생명이 꺼져가는 걸 보면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니 그런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빠졌다면 망설이지 말고 빠져나오길 바란다. 빠져나오는 순간에도 당신의 손을 끊어지지 않는 쇠사슬이나 끈으로 옭아맨다면 과감히 손을 자르고 나오길 바란다. 그럼 목숨은 건질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손가락을 잃었지만 몇 번째 손가락을 잃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 일이니까. 그러므로 키에르도 어떤 손가락을 잃었는지 서술할 수 없다.

  키에르의 여동생 키티는 밝은 갈색 머리에 커다랗고 동그란 눈을 가졌고 입이 굉장히 작고 수줍음이 많았다. 키에르와 사이는 좋지 않았다. 키티가 언젠가 물어본 적이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대답이 없었다. 이후로 묻지 않았다. 키티의 관심사는 오로지 키에르에게 있었기 때문에 형이나 여동생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키에르가 키티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찾아낸 잡동사니-예를 들면 예쁜 조약돌, 유리구슬 같은 것-를 가져다줘도 본 체 만 체 하거나 자리를 뜨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캐시의 마음에 작은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처음 이 사실을 눈치챘을 때 캐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왜 키티를 볼 때마다 마음이 요동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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