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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Mar 14. 2023

고양이의 방탕함 <그래서, 어디로>

5

그는 열네 살이었고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주변어른들은 모두 스무 살 안팎이었고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죽어나갔다. 4페니 관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면 괜찮은 편이었다. 1 페니 싯업-의자에서도 매일 죽은 사람들을 끌어냈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터크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해진 천조각을 어설프게 기워입었고 온몸은 작은 상처와 멍투성이로 가득했다. 항상 고개를 숙이고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돈과 빵을 주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필요하지 않았다.

 새벽 네시가 되면 강제로 눈을 뜨고 일어나서 일 분 정도 가만히 서서 눈을 감는다. 지난 꿈 자리에 그들이 왔다간 흔적이 있는지 살펴본다. 몇몇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의 무어라 말을 내뱉을 때쯤 다시 눈을 뜨고 그 자리에 일어나서 자리를 한 번 털고 거리로 나선다. 쉼터에서부터 면직물 공장까지 가려면 이십 분 정도 걸어야 했다. 그 시간조차 아까웠다. 잠을 자고 싶었다. 걸어가면서 실컷 낮잠을 자는 상상을 자주 하곤 했다. 뿌옇게 안개 낀 거리는 발 밑을 지나다니는 쥐들과 온갖 악취 나는 쓰레기와 오물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초점 없이 구걸하는 부랑자들-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공장에서 쫓겨나 갈 곳 없는 소년과 소녀들이나 쉼터에 머무를 조차 없는 사람들-과 골목 구석진 곳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어두컴컴하고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공장 앞에 고인 웅덩이 물은 계속 방치되어 있었고 때론 누군가가 넘어지기도 했으며 간신히 살아남은 집들은 허물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근처엔 상류층들을 잔뜩 태운 관광목적의 버스들도 간간히 지나다녔다. 터크가 그들을 볼 기회는 없었지만 지나간 자리에 빵이나 소량의 돈을 주고 간다 들었다. 거리로 내몰리는 순간 모든 게 끝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보러 나갈 순 없었다. 생각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고 언제나 한계까지 몰아붙여 일을 했다. 터크가 쓰러진다면 또 다른 누군가로 금방 교체될 가능성이 많았다. 쓰러지기 전까지 제 몸의 할 일을 다 하고 가는 게 그의 생의 목표였다.  

 캐시는 주일학교에서 여자 기숙학교로 옮겨졌다. 애초에 주일학교도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지만 아버지가 간신히 캐시의 편을 들어주어 겨우 나갈 수 있었는 데 헛간에서의 일이 화근이 되었다. 키에르를 내버려 두고 도망치던 날 캐시가 그곳에서 나오는 걸 다른 소작농이 발견했고 부모에게 일러바쳤다. 그 안엔 함께 했던 불장난 자국과 낙서들 냇가에서 주워온 돌멩이들과 캐시가 집에서 훔쳐온 간식들이 발각됐고 헛간은 자물쇠로 단단히 잠겼다. 하인들이 수시로 들락날락 하며 외부인이 들어오는지 확인까지 하기 시작했다. 키에르와 연락할 길은 없었고 기숙 학원에서 자수를 하고 책을 읽으며 신부 수업을 해야 하는 신세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원한 건 코르셋을 입고 정숙한 요조숙녀가 되어 부잣집 도련님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최선은 주일학교였고 그 이상은 아니었다.

 키에르는 어디로 갔을까. 캐시는 매일 밤 생각했다. 몸이 부쩍 자라난 키에르는 굴뚝에 들어갈 수 없어서 그 일도 그만두었고 농장일을 많이 돕기 시작하고 있을 때였다. 어려서 숯검댕이를 묻히고 일하면서도 환하게 웃던 소년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부모님과 함께 농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부모님 밑에서 소작농으로 일하고 있던 그의 고모를 통해서 처음 봤다. 부모님은 그의 고모를 방문할 일이 있었고 캐시는 그저 부모님을 따라갔을 뿐이었다. 허름한 단칸방에 여러 명의 식구들이 있었지만 다들 말이 없었고 움직임도 거의 없었다. 캐시의 눈엔 살아있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당시에 일곱 살이었던 키에르는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검은 얼룩이 군데군데 남아있었다. 캐시에겐 얼룩이

신기해 보였고 부모님이 얘기하는 사이에 멀뚱이 서있는 키에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 검은 얼룩들은 지워지지 않는 거야?” 응. 아마도 지워지지 않을 걸.“ 캐시는 쾌활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넌 이렇게 그대로 사는 거야?“ ”응, 아마도.“ 뚱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키에르를 보고 캐시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깊고 파란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기만 했다. 키에르는그녀가 입은 깨끗하고 단정한 드레스에 눈길이 갔다. 캐시가 부모님을 따라 단칸방의 문을 나설 때 키에르는 그 뒤를 쫓아갔고 드레스를 잡았다. 손자국이 남아 얼룩졌지만 캐시는 부모님이 보이지 않게 급하게 드레스 자락을 손으로 감추면서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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