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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May 31. 2023

DAY.2 호수

Written by. ED

물이 고여있다. 단단한 물이 고여있다.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고 싶지 않은 데, 해야만 하는 일들이 고여있다. 고여있는 일들을 흘러 보내려면 계속해서 손목을 움직여 파내야 한다. 고여있는 상황을 타개하고 싶다. 무의식 중에 물리치는 일들, 하는 일들, 의식적으로 하는 일들, 때로는 모든 일들이 나를 괴롭게 만들고 고립시킨다. 고여있다. 아주 오랫동안 고여있었다.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들이었다.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멈춰 죽으려 했다. 알고 싶지 않았고, 알 필요가 없는 일들이었다. 한가득 고여있는 피웅덩이 앞에 앉아 울고 있다. 눈물과 피가 섞이고 물도 섞인다. 온갖 체액을 쏟아붓는다. 그 앞에서 계속해서 생각한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감정을 쏟아붓고 토해낸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언제나 같은 말을 하고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이미지를 상상한다. 한계점에 다다른다. 길을 내고 싶다. 속 시끄러운 말들을 마구잡이로 내뱉고, 파문이 일어나고, 뜨거운 날씨에 메마를 것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메마르고 갈라진 땅 위에서 나는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눈물을 흘리고, 피를 흘리며 나만의 호수를 만들고, 말리고, 만들고, 부수며 흔적을 남긴다. 달의 표면처럼 울퉁불퉁하고 태양의 반점처럼 까맣고 뜨거운 잔흔을 남긴다. 손목을 칼날로 그으면 떨어지는 까만 피. 떨어지고 나면 까맣게 변하고 마는 상처를 매일 만든다.

 호수에 빠진 고양이를 구하고, 손목을 잃었다. 어떤 선택이 나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선택했을 뿐. 무엇을 원했는지 알 수 없지만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었다. 눈물 마를 날이 없지만 호수는 마르지 않았다. 더 이상 흔적들이 생기지 않고, 정신을 잃지 않았다. 취한 상태로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대도 아무도 듣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고, 아무도 없을 예정이었다. 떨어지고, 명멸하는 빛 위에서 사라져 버릴 말들을 폭포처럼 쏟아내고, 그 말들은 서로에게 생채기를 냈다. 그리고 서로 피 흘리며 죽였다가, 새로 태어나고, 그런 일들을 반복했다. 새로운 길을 내기 위해 손목을 열심히 움직이다 남은 손목마저 잃었다. 남은 건 손가락과 입. 제 할 일을 다한 손목엔 피웅덩이가 가득 고여있었다. 빠져나오지 못한 고인 피들을 째서 흘러 보내주고 평화를 주었다. 더 이상 새로운 길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부담감을 덜어주고 스트레스를 덜어주었다. 이제 남은 것들은 흘러가기만 하면 된다. 이대로, 흘러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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