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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May 31. 2023

DAY3. 병든

Written by. ED

1.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나는 병든 게 아니라 오염된 것이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병들었다고 생각했다. 남들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건 열네 살 때였다. 잠이 들면 온갖 끔찍한 존재가 날 찾아왔다. 최근에도 내가 주워온 인형의 얼굴로 찾아왔다. 인형의 얼굴이 이상해서 빤히 쳐다봤더니 아주 선명한 목소리로 “제법인데”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는 바로 응수해 줬다. 네가 뭔데, 감히, 제법이래. 남의 꿈에 기생해서 살면서. 감히. 난 이제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아. 너의 존재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아. 아무리 끌어내리려 해도 안 될 거야. 난 병이라고 생각하던 너를 극복했으니까.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으니까.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긴 시간 동안 나는 너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어. 시든 꽃처럼 병들었다고 여겨왔던 나에게 거름이 되어주길 바라. 무의식 중에 스며들어 가장 약한 때에 나타나 더 힘들게 만들었던 존재.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또 다른 나. 병든 나. 앞에 나설 수 없는 나.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갈지 고민했지만 우리에게 답은 없어. 확신에 찬 대답도 언젠가는 뒤집힐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나의 시간이야.


2.  병든 사람을 보고 있다. 전혀 관심이 없는 데도, 계속해서 말을 거는 사람을 보고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고 애쓰는 사람을 보고 있다. 누구에게 사랑받고 싶을까. 불특정다수에게 사랑받고 싶은가. 그의 대상은 정해져 있고, 나는 부가적인 인물일 뿐이다. 조연, 지나가는 행인 1 정도의 사람이다. 무너지는 모래성을 쌓고, 또 쌓는다. 나는 의미 없는 대답을 하고 눈길도 주지 않는다. 난 거짓으로 주는 관심이나 사랑은 받고 싶지 않아. 네가 내게 했던 말들은 너 자신에게 하는 말인 거야. 어떤 대답을 해도 의미 없었지.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어. 네가 쓰러지기 직전이었으니까. 적당한 시기를 거쳐 어느 정도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지. 여전히 누군가를 찾으면서, 믿지 않고, 자신만을 사랑하겠지.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지 말고 후회도 하지 말고 지금처럼 살아. 너의 고통과 나의 고통은 모든 게 다르므로 만날 수 없어, 그러니 이쯤에서 서로를 위해 안녕을 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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