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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Jun 01. 2023

DAY3. 병든

Written by. DKS

아파본 사람은 아픈 사람의 심정을 잘 알 거다 즉, 동병상련이란 말이다. 우리는 보통 아프다 하면, 몸의 병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난, 단호히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몸만큼 영혼도 병들고, 아파하고, 힘들어한다는 것을 안다. 어릴 때 난, 다리 난간에 서서 목숨을 가지고 시험한 적이 있다. 난간 위에 올라서서 난간 저편까지 건너가다가 헛발을 디디면 개울 바닥에 떨어져 죽는 거고, 아니면 사는 거지 하면서 담담하게 난간에 올라 건너편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하며,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은 적이 없었다. 숨을 쉬고 있었지만 영혼 깊숙이 파고든 죽음과의 동거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생선이 썩을 때 구더기가 슬듯이 내 영혼엔 언제나 죽음의 잔상이 남아 날 잡아끄는 것 같았다. 날 버리고 간 아버지, 그리고 내 곁엔 듣지 못하는 어머니, 어린 누나, 남동생, 갓 태어나 외갓집으로 같이 쫓겨 온 여동생이 있었지만, 언제나 늘 혼자처럼 느꼈고 외로웠다. 말할 사람도 없고, 놀아줄 사람 또한 없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해야만 했다. 시골학교로 전학 와선 친구도 없었고 서울 학교에 두고 온 친구들만 그리워했다. 그래서 한동안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시골학교의 특성상 텃세가 심해서 전학 온 친구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여럿이 짜고 패고 따돌림 시키고, 그래서 더, 악바리같이 친구들하고 많이 싸웠다. 그러던 어느 날은 학교가 가기 싫어서 학교 가는 길옆에 산속으로 들어가서 누구의 무덤인지 알지 못할 무덤가에서 혼자 놀다가 지쳐 잠들어 버린 적이 있었다. 그때 막 잠이 들면서 그 무덤 속으로 내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을 때, 마침 멀리서 학교를 파하고 돌아오는 친구들 떠드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무덤가 잔디 위에 내가 누워있었다. 무엇에 홀렸는지 몰라도 깜짝 놀라서 부리나케 산을 내려와 친구들보다 먼저 집에 들어와 가방을 마루에 내던지고 한숨을 몰아쉬며 벌러덩 누웠다. 그 당시 내 영혼은 삭정이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그리고 대상 없는 그리움에 목말라했다. 무엇을 향한 그리움인지 내겐 절실했고, 외롭고 말라가는 영혼에게 대상 없는 그리움이 그나마 활력소가 되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 때 많은 도움을 준 것 같았다. 그때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집착이란 병이 하나 더 늘었다. 그리운 사람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봐야지 못 보면 미칠 것 같은 병,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겐 너무 집착해서 그들이 질색하는 병, 병위에 병이 더하여지고 영혼이 말라비틀어지는 병......, 영혼의 아픔이란, 겪어보지 않은 보통 사람들에겐 가당치 않은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겐 아주 익숙한 말이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나날들을 불면에 시달리면서 허깨비나 귀신같은 것들이 꿈속을 넘나들고, 돌아가신 외할머니, 어머니, 주변 사람들 모두 내 꿈속의 문을 열고 들어와 때론 반갑게, 때론 슬프게, 때론 아프게 다가온다. 얼마 전에 알코올 중독으로 넘어져 머리가 다쳐 죽은 내 친구도 내 꿈속을 자주 방문한다. 그 친구는 쭉 시골에 살면서 내가 시골에 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였다. 단지 알코올 중독이라서 그렇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 항상 취해서 술 먹을 돈 좀 달라고 나에게 부탁하는 친구였다. 다른 사람들은 알코올 중독이라고 돈 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난 그 친구에게 살면, 언제까지 산다고 하면서 술도 사주고 돈도 주고 그랬었다. 어찌 보면 그 친구는 나보다 더 정신적인 고통 속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어쩌다 술 깬 모습을 보면 넋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한숨만 푹푹 쉬던 친구였다. 그러나 그 친구는 지금 세상에 없다. 가끔 내 꿈속을 방문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난 그 친구가 방문하는 날은 참 기분이 좋았고, 불면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이상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불면의 밤을 보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사람은 누구나 다 육체가 병들듯이 영혼도 병든다. 저 끝없는 암흑과 늪, 그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그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도 못하고 뜬눈으로 그대로 밤을 지새우는......, 그런 고통을 느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의 깊이를 알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런 상태로 허우적댈 수는 없다. 이젠 벗어나야지, 벗어나야지 하면서, 평생을 병과같이 아파하는 삶을 산 것 같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지만, 영혼의 병은 나의 유연한 동반자로서 죽는 날까지 잘 타협하면서 살아가는 길이 오직 내 길인 것 같다.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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