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D Jun 03. 2023

DAY4. 등불

Written by. DKS

내 마음의 등불은 듣지 못하시는 나의 어머니였습니다. 본인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항상 자식들만 생각하시고 하다못해 본인 입속에 들어간 밥알도 다시 뱉어서 자식들에게 먹어주시는 그런 어머니였습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어머니는 산에 나물을 뜯으러 가셨습니다. 참나물, 취, 두릅, 홑잎 나물, 더덕,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나물 등 정부미 포대에 한 포대씩 가득해서 지고 오셨습니다. 어머니가 나물을 해오시면 외할머니는 마루에다 나물을 펼쳐놓고 종류대로 골라서 물을 뿌린 다음 비닐로 덮어놓고서, 이른 새벽 첫 버스를 타고 경동시장에 가서 팔고 오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어머니는 친척 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깊은 산으로 나물을 뜯으러 가셨습니다. 음력 오월 오일(단오)까지는 산나물을 해다 팔곤 했으니까요. 나물꾼들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 서로 흩어져 나물을 뜯습니다. 가끔 군호(꾸, 꾸)를 해가면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고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위치를 옮기곤 했습니다. 그날따라 어머니는 나물에 정신이 팔렸는지 돌봐주시는 친척 언니와 간격을 많이 벌려갔습니다. 어머닌 듣지 못하시기 때문에 서로 주고받는 군호를 알 수 없었습니다. 늘 산에 가면 어머니의 친척 언니가 옆에서 챙겨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물에 정신이 팔린 어머니는 나물을 따라가다가 친척 언니와의 간격이 벌어진 것도 모른 채 깊은 산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친척 언니가 엄마를 찾으려고 산속을 헤매다 결국 찾지 못하고, 나물도 제대로 뜯지 못한 채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산을 내려왔습니다. 이때는 땅거미가 깔리는 어슴푸레한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친척 언니는 우리 집에 들러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외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이모 순희를 잃어버렸어, 내 옆에서 나물을 뜯고 있었는데 살펴보니까 없어서 여태껏 산을 뒤지다 이제 내려왔어” 외할머니는 청천벽력 같은 말에 넋이 빠지셨습니다. 얼른 나와 내 동생을 부르더니 찾아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동생과 플래시를 들고 초조한 마음으로 산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동생과 둘이 어둠이 내리는 산속에서 어머니를 찾는다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는 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듣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리 불러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동생과 난 엄마, 엄마, 하고 불러보기도 하고 후레쉬를 빛이 보이도록 흔들어도 보았습니다. 결국 우리 둘이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나와 동생은 엉엉 울면서 산속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횃불을 들고 동네 사람들이 산을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외할머니가 사람들을 불러 모아서 오신 것 같았습니다. 나는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동네 사람들이 마치 구세주 같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이젠 어머니를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에 큰 한숨을 쉬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일렬로 서서 각기 횃불 하나씩 들고 산길을 환하게 밝히면서 산을 올랐습니다. 어머니가 듣지 못하니까 사람들은 소리 지르기보다 횃불을 흔들었습니다. 혹시 길을 잃거나 다쳐서 바위틈이나 동굴 같은데 은신하고 있지 않나 해서 산 정상 부분에선 서로 흩어져서 횃불을 흔들었습니다. 아무리 횃불을 흔들어도 인기척 하나 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뒤지다 지친 동네 사람들은 늦은 밤까지 어머니를 찾는 일은 더 이상 힘들 것 같다고 하면서 이제 그만 찾고 날이 밝으면 내일 새벽에 다시 오자고 하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으로 모여서 낮 동안 내가 낚시로 잡아놓은 물고기 조림을 안주로 삼아 막걸리와 소주 등을 마시며 날이 밝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동안 환하게 마음을 비춰오던 등불이 꺼져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엄마를 못 찾으면 어떻게 하지,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 온갖 잡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 순간은 절망이었습니다. 인생 최대의 절망, 눈앞이 캄캄하다는 말 들어봤지만 현실로 내게 닥치니 정말 아득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떠들고 마시고 웃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꼴을 보면서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술판을 다 엎어놓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로선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게 최선일뿐 뭘 어찌해 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나 혼자 다시 산에 올라 엄마를 찾을 수도 없는 일이고 마음만 초조하고, 안절부절 갈피를 못 잡고, 동이 트는 새벽을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천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소리가 집 뒤꼍에서 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엄마, 하고 외할머니를 부르는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모두들 깜짝 놀라 소리 나는 쪽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거기엔 어머니가 나물 보따리를 짊어지고 서있었습니다. 난 화들짝 놀라서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 부둥켜안았습니다. 얼른 어머니의 나물 보따리를 뺏고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어머니는 마루에 앉아서 말씀하시길, 나물 뜯다가 보니 좋은 참나물이 지천에 널려 있어서 많이 뜯을 욕심에 그만 정신줄을 놓고 나물만 따라가다가 사람도 잃고 길도 잃었다고 합니다. 날은 어둡고 캄캄해져서 도저히 길을 찾을 순 없고 산꼭대기로 올라서서 밑을 바라보니까 저 멀리 불빛이 보이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머닌 길도 없는 산속을 그 불빛을 따라 찬송을 부르며(어머닌 독실한 기독교신자 셨습니다) 한참 내려왔는데 내려오다 보니까 큰길(행길)이 나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가 어딘지 몰라서 지친 몸으로 길바닥에 철석 주저앉아서 쉬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는 차가 어머니 옆에 서더니 타시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머닌 듣지 못하지만 사람들의 입모양을 보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차를 타고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봤더니 운전하시는 분이 현리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어머닌 산에서 나물을 뜯다가 길을 잃었다고 운전하시는 분에게 말씀드리고 대성리까지만, 태워주시면 고맙다고 하셨답니다. (우리 어머는 내 밑에 남동생을 낳으시고 신경쇠약으로 귀를 먹어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엔 말씀도 잘하시고 듣기도 잘하셨기 때문에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나에겐 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너무 기뻐서 어머닐 태워다 주신 운전기사분께 고맙다는 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그분은 어머닐 바로 내려 주시고 가셨다고 합니다. 세상엔 천사 같은 분들이 참 많은 거 같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마음의 등불의 심지를 올리고 돌아오신 어머니의 환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세상에서 둘도 없는 행복감에 젖어있었습니다. 지금 어머닌 세상에 아니 계십니다. 그러나 어머닌 언제나 내 맘속에 등불로 남아서 나를 지켜주실 거라 믿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DAY4. 등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