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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Jun 03. 2023

DAY5. 찌른다

Written by. ED

DAY5. 찌른다


 송곳이 머리를 찌른다면 이런 느낌일까. 편두통과 두통에 시달려온 난 항상 찔리는 느낌을 받았다. 통증이 머리 전체적으로 오는 게 아니라 관자놀이 부근에서 송곳니나 바늘로 여러 번 찔러서 두근 거리는 기분이었다. 주사를 맞을 때, 타투를 받을 때, 압정이나 실수로 바늘에 찔렸을 때와 다르다. 커터 칼이나 가위에 베었을 때랑도 다르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통증의 종류는 얼마나 다양한가.

 톨스토이의 유명한 문장이 떠올랐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페이지에 있는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물론 행복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실 행복의 여러 가지 종류에 대해 서술하거나 읽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여러 가지 불행이나 고통에 대한 종류와 감정은 스스로 겪은 게 많아 알고 있는 게 많지만 나에게 행복은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나뉜다. 사랑하는 사람들, 내 고양이들과 함께하는 기쁨, 스스로 열심히 해서 얻어낸 성취감(진급, 자격증)등, 사고 싶은 걸 구매했을 때, 가끔 바람 쐬러 어딘가 놀러 갈 때, 마지막으로 잠을 푹 잤을 때. 이렇게 다섯 가지 정도. 나머지는 크게 모르겠다. 반면 불행하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이나 기억은 너무 많다. 삶은 인내와 고통이 80%가 아닐까. 나머지는 행복이라던가, 자아실현을 한다던가. 그런 게 아닐까. 누구에게나 숨겨져 있는 재능과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는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자기 자신에게 제일 소홀하고 못되게 구는 게 싫다. 누군가가 아닌 나를 찔러대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지치고 화가 나지만 그 모습조차 나라고 인정하는 게 힘들었다. 다른 사람을 싫어하고 경멸하고 짜증 내는 것보다 나 자신에게 하는 게 더 쉽고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더니 나중에 너무 힘들어져서 일상생활조차 어려웠다.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감도 떨어지고 회피하고 도망치고 싶고 그러다 아무것도 안되면 울다가 죽고 싶어졌다. 나중엔 아무 이유가 없어도 죽고 싶어 지는 게 문제였다. 지금도 종종 그렇다. 배고프면 밥 먹어야지 생각하는 것처럼,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고 있으면 저기 치여서 죽으면 어떻게 될까, 고층건물을 보면 저기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게 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일이 대단히 특별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 돼버렸다. 나 자신을 찌르는 일이 습관이 돼서 완벽하게 극복할 수 없지만, 즐길 순 있다. 이 감정을, 이 생각을 모두 써 내려가는 일이다. 어떻게 아팠고, 무엇을 생각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반복되는 일의 원인은 무엇인지 파악하거나 혹은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일을 하고 있다. 나의 글은 나의 비망록이고, 치유의 흔적이다. 스스로 치유하려고 노력했던 흔적들. 성공이나 실패와 관계없는 과정들. 살아있는 동안 평생을 읽을 나만의 책이다. 내가 모르는 나와 그 시절의 나를 연구하고 파악해서 지금의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기 위해서 기록한다. 지금의 기록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10년 후에 봤을 때, 역시 쓰길 잘했어. 시도하길 잘했어라고 말할 내가 떠오른다. 나는 어떻게든 살아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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