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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Jun 20. 2023

DAY 7. 연필 <광기 어린 눈빛>

Written by. ED

DAY 7. 연필 <광기 어린 눈빛>


 연필로 사람의 눈을 찔렀던 사람을 알고 있다. 그의 눈빛은 광기로 빛나고 있으며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가득하다. 젤을 발라 잔뜩 세운 머리, 땅딸막한 체구로 홀을 종횡무진하며 걸어 다닌다. 평소에 그의 눈은 죽은 생선의 눈을 하고 있으나 아무도 없는 둘만 있는 공간에 도착하면 그 눈빛에 날이 선다. 나를 어떻게든 죽이려고 하는 칼날이 들어선다. 여러 명이 있는 공간이나 우리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이 지나다닐 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는 둘이 있을 때만 보이는 그 야비하고 더러운 눈빛을 견딜 수가 없다. 숨이 막히고 구역질이 난다.  그와 나는 별 것 아닌 일로 말다툼을 많이 했고, 직급이 같았지만 선배였던 나는 애써 침착하려 했다. 말려드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그의 페이스에 말려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내편을 들어주었다. 그는 자기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들의 말은 철석같이 잘 들었다. 나를 포함한 아랫사람들에겐 광기 어린 눈빛을 쏘아대며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죽이려들었다. 상사들은 알고 있으면서 그를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나를 크게 나무라지도 못하고 그저 그를 잘 달래면서 해보라고 달랬다.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하고, 그에게 당했던 아이들이 어디서 주워온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그가 전에 있던 직장에서 연필로 사람 눈을 찔렀다는 소문이었다. 뒷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소름 끼쳤다. 그 얘기를 듣자 광기 어린 눈빛이 모두 이해됐다. 그 이후엔 그와 근무하는 게 무서웠고, 단 둘이 있는 시간이나 공간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떤 눈빛으로 보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내리까는 사람들을 알고 있었다. 눈빛, 차가운 눈빛, 경멸하는 눈빛, 흔들리는 눈빛, 많은 말을 해주지 않아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읽어야 하는 이차 텍스트, 해석의 여지가 남아있는 눈빛을 읽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중에 가장 맘에 들지 않는 눈빛을 골라 찌른 듯했다. 찔린 이의 눈보다 내 눈빛이 덜 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살아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어 그의 존재자체를 부정하지 않았고, 좋아하지 않았다. 싫어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누군가를 경멸하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남아있는 인류애를 끌어모아 어떻게든 그를 이해하려고 한 순간들도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그가 안타까웠고,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 이상의 일은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친구도, 연인도, 가족도 아무것도 아닌 그저 직장동로였고 범위를 벗어난 일을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의 그릇이 차고 넘쳐흘러내리고 있을 때였다. 자신도 제대로 돌보기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눈빛에서 나를 읽어냈는 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찌르고 싶은 욕망, 터뜨리고 싶은 욕망, 가득 차서 넘치기만 하는 잔을 비워내고 싶은 욕망. 그 모든 욕망 가운데 그가 있었고, 우리는 결코 어떤 관계도 맺을 수 없었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그를 거절하지만 나에게만 보였던 눈빛이나 태도는 용서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궁금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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